한국일보

맨하탄의 영웅들

2015-04-25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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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고소공포증이 있다. 꼭 높은 곳에 올라서지 않아도? 그림이나 영상만으로도 현기증을 느끼며 모든 말초 신경이 곤두서며 나도 모르게 소스라치는 소리까지 내기도 한다.

지난여름 로체스터 여행에서 그런 나는 그야말로 고소 공포증을 마구 불러일으키는? 사진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스트먼 하우스에서 만난 루이스 하인의 사진들이 그것이다. 로체스터에는 필름 카메라 시절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Kodak Company와 관련된 자취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 중 코닥의 설립자 조지 이스트먼의 하우스는 사진 필름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사진들은 그의 사후 모마(Museum of Modern art)에 기증하려 했으나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조지 이스트먼 하우스로 오게 되었고 그 덕에 모마에 가 볼 기회가 없었던 나는 우연찮게 이 범상치 않은 사진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난 루이스 하인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는데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진작가로서 다큐멘터리 시대를 연 기록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의 사진들은 먹고 살기위해 당연해져 피사체가 느끼지 못하는 애환을?사진이라는 매체로 대신 느껴주듯 보는 이들에게 전달한다.

그 때 그의 나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였는데 그 높은 곳에서 아슬아슬한 철골에 매달려 카메라 셔터를 눌렀을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단순히 기록의 역할을 위해서만 그가 이곳에 오르진 않았으리라 짐작되었다.

아마도 죽음을 각오한 일이 아니었을까?누구나 한번쯤은 와 보고 싶어 하는 뉴욕의 맨하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나 라커펠러 센터 전망대에 올라 맨하탄에 선 감격을 느껴보는 로망은 이곳을 동경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었으니까.

그리고 에지워러에서 보는 맨하탄 야경 속 화려한 마천루들을 보면서 백여 년 전에 이룬 저들의 현대화에 대한 눈의 즐거움만 즐길 뿐 그 시절 저 높은 건물들을 만든 그 누군가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그의 사진을 둘러보는 내내 그 높이의 아찔함과 고통이 전해져 몇 번이고 몸서리가 쳐졌다.

그가 한 노동자 일상에 대한 의미부여는 제도와 사회를 변화 시키는 기여를 했다? 그는 특히나 어린이 노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사진을 찍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고 그 결과 아동 노동 금지법이 통과되었다.

여기서 그에게 배울 수 있는 것, ‘이 세상엔 당연히 여길 것이 없다’ 라는 것이다.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 것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아니 무심코 지나치지 말라는 경고같이 느껴진다. 헤아리고 공감하라는 경고 말이다.

그 당시 1930년 대 미국의 경제 상황을 반증하듯 그들은 굶어죽으나 떨어져 죽으나 같았던 것일까?안전장치 하나 없이 살기위해 철골에 매달려 일하는 모습이 보는 우리에겐 눈을 의심할 정도로 특별해 보이는데 그들의 표정을 보면 너무나 태연하다.

아슬아슬한 고층빌딩 공사장 철근 위에서 해맑게 점심을 먹으며 고단한 노동중간 쉬는 시간을 보냈던 그들을 보며 인생의 진정한 쉼은 어디에서 오는가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갈수록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한국의 상황들이 떠올랐다. 해소하기엔 너무 깊은 삶의 격차를 짚어보면서 내 삶의 영역 안에서 범상한 것들을 주의 깊게 보는 지혜를 갖길 소망해 본다. 거창하지 않게 그러나 소신 있게…….

이혜진<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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