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왕과 사는 남자’ 영화를 보고

2026-04-02 (목) 07:57:50 전애자/시인·뉴욕문학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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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유튜브를 뜨겁게 달구는 엄흥도의 이야기…
삼족을 멸한다는데도 단종의 시신을 거두고 호장자리를 잃고, 연로하신 어머님과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 성도 바꾸며 어렵고 비참한 생활을 했던 엄흥도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는 놀랍고 자랑스럽다.

‘위선비화 오소감심’ (선한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해도 달게 받겠다) 마음으로 선의를 행했기에 212년이 넘어서 사육신과 같이 인정하여 벼슬도 주고 엄흥도의 가족을 위인으로 인정하고, 현시대에서도 재조명된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정의를 보여줘서 두고두고 귀감이 될만하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단종과 같이 심어진 소나무는 죽지 않게 멋지게 살아줌도 고맙고, 마을 백성들은 알면서도 입을 다물어 주었음도 대단한 것 같다. 그래서 적으나마 단종의 시체가 오래 보존되어 지금의 왕릉으로 지킬수 있음에 다행으로 생각된다.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시니어 센터에 가려고 차를 타려는데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새로 생긴 데이케어에서 영화관을 통째로 빌려서 시니어들에게 한국영화를 공짜로 보게 한다니 같이 가자고 했다. 오랜만에 미국에서 한국영화를 본다고 해서 기뻤다.

비가 와서 스케줄이 다음 월요일로 바뀌었지만 나와 친구들은 입장료를 내고라도 가기로 정해서 4시에 상영되는 영화을 보러 갔다. 친구들과 극장문을 들어서니 자리가 몇 개 남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과 같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띄엄띄엄 표를 사서 앉았다.

‘왕과 사는 남자’라고 해서 처음에는 내시 이야기인가 했더니 세종대왕의 손자인 비운에 간 단종이야기였다.
‘왕과 사는 남자’영화 배경은 1457년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유배온 16살인 어린 단종과 그 마을 촌장에 얽힌 이야기였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왕위를 물려 받고, 왕궁에서 쫓겨나 낯선 곳에 귀양살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내 가슴이 아팠다.

노산군이 목졸려 죽을 때는 영화관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웠다.
엄흥도 역을 맡은 유해진 연기가 빛났고, 단종 역을 맡은 박지훈도 잘 했고 한명회 역을 맡은 유지태도 역사에 실린 한명회와는 달랐지만 위엄있는 표정 연기며 큰 풍채가 빛났다.

영화를 다 보고 극장문을 나서는데 그 때까지도 늦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려 단종의 죽음으로 젖은 내 마음이 더 젖었다.
영화를 본 외국인도 단종, 수양대군, 엄흥도를 찾아 본다고 하니 좋은 역사는 아니지만 많은 관심을 가진다고 해서 흐믓했고, 영화가 국내외로 성황리에 상영된다니 자랑스럽고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도 더 좋은 영화들이 미국에 많이 들어 와서 외화도 벌고, 재미동포들을 즐겁게 해 주면 좋겠다.

<전애자/시인·뉴욕문학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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