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카밀 정 ㅣ 산길에서 만난 Scarlet Pimpernel
2015-03-20 (금) 12:00:00
오랫만에 로스가토스에 있는 트레일에서 하이킹을 했다. 마침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덤덤히 산에 오르면서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또 한살 먹는구나 생각했다. 사람, 아니 생명체가 이 세상에 나와 열심히 살다 언젠간 가고 또 다른 생명체가 태어나 한쪽에선 기뻐하고 다른 쪽에선 간 사람을 그리워하며 슬퍼하고 인생은 그리 도는 것이구나 싶었다.
문득 나를 낳고 고생했을 엄마도 떠올렸다. 또 내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어떻게 따듯한 감성과 바른 가치관을 전해줄까 잠시 고민했다. 그때 내눈에 들어온 것이 오렌지 노랑의 그림같이 예쁘게 듬성듬성 나있는 실크 같은 촉감의 스칼렛 핌퍼넬(Scarlet Pimpernel)이었다.
다음 주 정도 와보면 아마 빽빽하게 나 있을것 같기도 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것이 걸어 올라가는 길마다 불을 밝혀주는 듯하고 기분까지 상쾌해져 내려가는 길은 말할 것도 없고 올라가는 길이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힘이 안 들었던 이유는 눈이 호강하고 기분이 밝아져서 그랬지만 그 꽃들을 보며 내가 순간순간 살며 걱정했던 부분들조차도 안심하게 됐기 때문이다.
아무도 물을 뿌려주거나 돌봐주지 않아도 그렇게 당당하게 아름답게 피어있는 스칼렛 핌퍼넬을 보며 자연과 자연의 섭리에 다시한번 놀라고 감사하며 잠시 내 아이들을 생각했다. 한살부터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불안하며 미안했던 마음이 컸다.
아이들이 내게 와서 편하게 모든걸 이야기하고 땡깡을 부릴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독립심이 유난히 강해 늘 깜빡깜빡 하는 나를 오히려 챙겨주었다. 그러다보니 어떤 때는 기강을 잡으려고 해도 늘 미안함이 자리잡고 있어서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주는 아이들이 신기하고 고마웠다.
이제는 엄마가 괜찮은가 묻고 걱정까지 해주니 기특하기까지 하다. 어느새 산을 내려올 때쯤 걱정이 싹 가시고 내 아이들도 산길에 스칼렛 핌퍼넬처럼 졌다가도 때가 되면 다시 피고 옆에서 많이 챙겨주진 못했지만 엄마가 자기들을 사랑한다는 정도는 알리라 생각됐다.
그러고 나니 내려갈 때는 불안하거나 미안했던 마음이 저렇게 저 꽃들처럼 주변 사람들을 환하게 해주고 위안이 돼줄 수 있는 괜찮은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마음의 여유까지 갖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