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져야 할 연인 남자와 여자는 히로시마의 밤을 아쉬워 한다.
[히로시마, 내 사랑 (Hiroshima, Mon Amour) ★★★★★]
핵폭탄의 파괴성과 적의 그리고 그것의 암울하고 긴 잔영을 사랑의 수용 불가능성과 상징적으로 연결시킨 프랑스의 명장 알랭 르네 감독의 사무치게 아름다고 사색적이며 또 비감한 1959년 작 흑백 러브스토리다. 시랑의 망각성과 기억의 아픔을 히로시마의 고통과 원폭투하 불과 14년 만에 서서히 잊혀져가는 기억의 상실과 접목시킨 사랑의 얘기이자 반전영화다.
히로시마라는 범세계적 장소에서 일어나는 두 남녀의 하루 남짓한 이야기는 호텔 히로시마 118호실에서 두 남녀가 벗은 상반신을 꼭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어 나신 위에 내려앉은 핵진이 서서히 정사로 촉진된 땀방울로 변하는데 둘의 이런 모습은 핵을 맞아 응고된 두 연인을 상기시킨다.
남자(영화에서 두 사람의 이름은 없다)는 단조로운 톤으로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 것도 보지 않았소”라는 독백을 계속한다. 여자(에마뉘엘 리바-‘아무르’)는 히로시마에 평화에 관한 영화를 찍으러 온 파리지엔 배우요 남자(에이지 오카다)는 건축가.
내일이면 떠나야 할 여자는 2차대전 때 고향 느베르에서 겪은 독일 병사와의 쓰라린 첫 사랑 때문에 또 다른 살육의 장소인 히로시마에서 또 다른 외국인인 남자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친다.
남자와 여자는 밤새도록 인적이 끊긴 바와 식당의 네온만이 명멸하는 거리를 마치 이별을 연장시키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천천히 걷는다.
둘의 보조에 맞춰 따라가는 카메라의 걸음과 흑백촬영이 검소하면서도 고혹적이다.
두 사람은 다 기혼자이나 르네는 이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여자는 “남겠다”고까지 말하나 그것은 단지 염원일 뿐이다. 둘이 마지막으로 들른 카페는 ‘카사블랑카’ . 이어 호텔로 돌아온 여자를 뒤쫓아 남자가 방문을 두드린다. “올 수밖에 없었다”는 남자는 여자의 두 팔을 아프도록 붙잡고 “내 이름은 히로시마, 당신 이름은 느베르”라면서 영화는 사랑의 교착상태로 끝난다.
이 영화와 함께 르네의 1961년 작으로 상징이 가득한 흑백 예술영화 ‘작년 마리앙바드에서’ (Last Year at Marienbad)가 15일 하오 7시30분 이집션 극장(6712 Hollywood Blvd.)에서 동시 상영된다.
(323)466-3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