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최우용 ㅣ 독일 친구와의 펜팔

2014-12-10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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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텔레비전에 출연한 독일인이 “히틀러를 멋지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것을 보니 중 3때 독일 친구랑 펜팔을 한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엔 펜팔을 하는 것이 대 유행이었다. 내가 무지 고심해서 편지를 써서 보내면 그 친구는 능숙한 필기체로 답장을 써서 보내왔다. 내 영어 실력이 형편 없었기 때문에 가끔은 담임 선생님이신 영어 선생님께서 번역을 담당해 주시기도 하셨다. 그 친구에게서 편지가 온 날은 나보다 오히려 우리 반 친구들이 더 들떠 있었다.

다른 학교 친구도 아니고 다른 나라 친구랑 영어로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고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어느 날 편지에 나는 우리 나라가 올림픽도 개최했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등등 여러 가지를 열거하면서 우리 나라가 자랑스럽다는 말을 써서 보냈다. 그랬더니 친구가 보내 온 답장에 이런 말이 써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우리 나라를 자랑스럽다는 말을 쓰면 ‘나치’ 냐고 물어 봐. 우리 나라가 자랑스럽다고 이야기 할 수 없어.” 편지를 번역해 주신 선생님께서 독일은 히틀러가 저지른 학살을 창피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다른 건 몰라도 히틀러가 정말 나쁜 사람인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엔 굉장히 그 아이가 멋있어 보이고 독일이란 나라가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어떻게 자기 나라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 신기했다. 아마 그 당시의 독일 분위기가 자신들의 역사를 부끄러워하는 분위기였나 보다.

그 당시 나랑 같은 나이었던 그 친구는 아마 우리 나라를 자랑스러워하는 내가 더 이상하고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히틀러를 멋지다고 말하지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사를 읽으며 그 독일 펜팔 친구가 떠올랐고 그리고 그 때 그 느낌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리고 지금은 잘못된 것을 반성하는 그 사회 분위기가 부럽다.

갑자기 나랑 편지를 주고 받았던 노란 밤송이 머리의 그 꼬마는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나와 편지를 주고 받았던 것은 기억하고 있을까? 편지를 보관해 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살짝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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