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배순혜 ㅣ 우리집 코코 보며 이생각 저생각
2014-09-24 (수) 12:00:00
힘든 일과를 끝내고 돌아와 집안에서 빈둥대는 그녀를 보면 "먹고 놀고 잠만 자는 네 팔자가 부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름은 코코, 새끼때 와서 벌써 4년 된 우리집 고양이다.
코코가 오고부터 아들딸에게 잔소리가 늘었다. 처음 키우자고 할 때는 책임지고 돌보겠다더니 웬걸, 모래박스나 먹이통 등 관리가 잘 안된다. 각자 당번을 정해주어도 습관화가 쉽지않다. 애완동물 좋아하지도 않고 알러지 때문에 털은 질색이다. 눈치빠른 코코가 내 곁에 잘 오지도 않는다. 오늘은 왠지 코코가 예뻐 보인다.
모처럼 한가한 시간 여유 때문인가. 사실 게으름뱅이 그녀에게도 배울 점이 있긴 하다. 체조의 여왕이라 할 만큼 온몸을 쭉 스트레칭하는 걸 보면 무심결에 나도 따라하게 된다. 가끔 우아한 자태 대신 벌러덩 배를 위로 드러내고 누운 모습에 내 삶의 긴장도 풀어내는 여유를 배운다. 주인 왔다고 호들갑 떠는 개처럼 살가운 맛은 없지만 하는 짓거리가 귀엽긴 하다.
경제적 가치로 인정받는 가축에 비해 외모나 몸짓만으로도 사랑받는 애완동물은 사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길들여진 것이다. 인류가 최초로 길들인 개는 사냥목적으로, 고양이는 정착생활 후 쥐를 막는 곡물창고 지킴이로 길러졌다. 고대 아테네에서나 최근까지 애완동물 키우기는 주로 상류층의 호사스런 취미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가족의 일원처럼 친근감을 나누는 ‘반려동물’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온갖 전문용품들로 특별 대우를 하지만 반려동물의 참 의미는 개의 충직성으로 심금을 울린 명작 ‘돌아온 래시’에서와 같은 우정을 나누는 것 아닐까. 집안에 들일 때는 함부로 유기하지 않고 책임질 수 있는 지 신중해야 할 것이다. 또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동물에 집착한다거나 정작 돌보아야 할 사람이 있는데도 무관심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어사용과 두뇌능력으로 문명을 꽃피운 인간은 동물보다 많은 자유와 특권을 누린다. 또 먹고사는 데 만족하지 않고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말처럼 삶의 가치를 추구한다. 하지만 친밀감과 애정에 대한 욕구는 애완동물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대학생이 되어 독립을 준비하는 아들딸, 더많이 안아주고 쓰다듬어 줄걸 하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 빠져있던 상념에서 벗어나 코코를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상황파악이 안되는 코코가 눈이 동그래지더니 이윽고 몸을 비비며 애교를 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