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고] 김옥련 ㅣ 주방장

2014-09-11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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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랫동안 나하고 고생 많이 했소. 돈 한푼 없는 노인회를 맡았을 적에 정신이 아득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소. 우리같이 ‘코리아나’와 ‘이엠’마켓에 가서 밀린 돈 치루던 때, 현금갖고 가야만 식료품을 살 수 있던 그때가 어언 7년 전이요.

냉장고, 냉동고 돈은 어찌 치를까? 스토브 3개 값을 어찌 마련해 보겠다고 카운티에다 신청을 하던. 돌이켜 생각하면 멋도 모르고 그런 모험을 한 나와 주방장. 살림을 쪼개고 쪼개서 하며 한 푼, 두 푼 모아서 차곡차곡 쌓아놓으니 지금의 우리 노인회 살림이 되었으니. 당시 해야만 된다는 신념으로 눈물, 콧물도 없이 강철이 되어서 뚫고나간 우리. 지금 이 편지를 쓰면서 6년 동안의 고통의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니 아마 나도 강철이 변해서 샘물이 됐나보오.

이젠 눈물도 나올 수 있는 정이 흐르는 사람으로 변한거 보면. 어쩌다가 내가 뭐하나 더 집어 장바구니에 넣으면 주방장이 도로 갖다가 놓으면서 “안 된다”하고 그러다 모자라면 “회장님 잘못했습니다. 잉”하던 주방장. 아침 7시 반에 와서 식사준비하고 오후 3, 4시에 집에 가던 주방장. “회장님이 노인회 그만 둘 때까지 내가합니다”하고 말했던 당신의 몸이 고장이 나기 시작했소.


나이와 몸은 어찌할 수 없는 일. 일년, 240일을 하루 같이 밥해서 맛있는 반찬으로 50명의 식사준비를 해준 주방장. 이것을 내가 공든 탑으로 올려 쌓으면 몇 층이나 될꼬. 그리 억세게 일해 주던 주방장. 돈을 지불하면 돈 바람에 일을 한다 하겠지만 자원봉사로 나서 회장이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 자원봉사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꼬.

이 편지 쓰기 시작했을 때 밖이 깜깜했는데 지금은 동트기 시작하오. 조용히 앉아서 혼자 6년을 회고하니 얼마나 많은 일들을 거쳐 왔던지. 자원봉사로 시작해 변변하게 해주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내 마음이 슬프오. 주방장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뒤척거리며 잠 못 자고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있지는 않을까? 마지막에 내 사무실에 와서 “마지막까지 회장님과 같이 할라코 했는데”라며 눈물 흘리던 주방장.

하늘의 뜻에 도달했으니 우리가 받아들여야지 않겠소. 내 소원은 주방장이 현상 유지할 수 있는 건강상태로 주방장이 아닌 회원으로 계속 노인회에 나오는 거라오. 삶의 행복을 느끼도록, 긍지를 느끼도록, 속상했던 것, 슬펐던 것, 걱정스럽던 것 다 깨끗이 떠나보내고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새로운 세계, 즐거운 세계를 함께 마음껏 맛보는 것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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