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이름의 글쟁이가 글쓰는 펜대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단 몇 사람일망정 그의 글을 즐겨 읽어주는 애독자가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내 글이 나오는 날이면 그날 아침으로 어김없이 걸려오는 문우(글벗) L형의 전화, “오늘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라는 찬사는 나에게 밝은 하루를 열어 준다. 그리고 내 수필이 나온 그날 아니면 그 다음날로 “형님의 글에는 언제나 나이를 초월한 동심이 바탕에 깔려 있어 정말 좋습니다”라는, 나와 함께 오피니온 란에 글을 발표하고 있는 K 글벗의 평가 또한 나를 기쁘게 해 준다.
뿐만 아니라 역시 나와 같은 지면에 글을 싣고 있는 또 다른 문우 K형, 화가인 그의 부인의 내 글에 대한 소감까지 곁들여 전해주는 그의 자상함은 나로 하여금 글 쓰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시조시인인 C형의 전화나 신문에 글로써 내 글에 대한 찬사는 나에게 또한 글 쓰는 보람의 날개를 달아 준다. 어쩌면 나는 이러한 후배 문우들의 ‘찬사란 장단’에 맞춰, 나이 값 못하고 철딱서니 없이 춤추는 어린아이 같은지 모른다.
한편 태평양 넘어 그 땅, 서울로 광주로 경주로 그리고 내 고향 통영으로, Email로 보내지는 내 글에 대한 반응이 메아리 되어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2005년 한국문인협회 주관의 <주평동극상> 제1회 수상자이자, 베스트셀러 동화작가이기도 한 이현! 내가 친딸처럼 여기고 있는 현이가 9년에 걸쳐 내 수필을 읽어오면서 보내오는 숱한 편지 중에서도 지난달에 보내온 편지,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재미있게 쓰세요?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재미있는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아요”라는 편지는, 이 지역 문우들의 반응과 함께 내 글 쓰는 맛을 더해 주는 양념 같은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칭찬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자, 원동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30년이 넘는 역사와, 지방신문으로서는 꽤 많은 부수를 찍고 있는, 내 고향 통영에서 발행되는 <한산신문>, 이 신문을 받아보고 있는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통영인(사람)들이 이 신문에 5년 전부터 전재(옮겨실음)하고 있는 내 수필을 읽고는 전화로 편지로 그리고 내가 한국방문 때 내게 내 글을 읽고 있으면 떠나온 고향을 생각케 한다는 그들의 말에서 고향이 지척인 그들이나, 멀리 떠나와 사는 나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는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한편 지금은 70 고개를 넘어선 할머니가 되어 있을, 내가 가르친 그 가시나들이 한산신문을 통해 내 글을 읽는다면 60년 전 내가 교편생활을 그만 두고 교문을 나설 때 2층 교실 창가에 매달려 “선생님 잘 가이소!”라고 하던, 그 팃기 없던 소녀시절을 다시 떠올렸을까? 하는, 상상의 날개를 펴본다.
나는 수필 전문작가가 아니면서도 많은 편수의 수필을 써 왔다. 그러면서도 나는 수필가라고 말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모든 걸 버리고 아동극 극본을 써 온, 아동극 전문작가일 뿐이다!오늘도 내가 글 쓰는 방에 앉아, 여느 때처럼 음악을 낮게 깔아놓고, 새로운 동극 <넝쿨꽃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는데 ‘따르릉’하고 부엌 쪽 거실의 전화벨이 울린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그놈의 솔리스팅 벨(광고전화)이겠지 하고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데, 부엌에서 저녁상 차릴 준비를 하고 있던 마누라가 수화기를 들어 올린 듯, 벨소리가 딱 멎는다. 이어 “보소, 한국에서 전화 왔소”라는 집사람의 제법 큰 소리가 내 글방까지 들려온다.
또 한 사람의 내 친구가 갔다는 부음이면 어쩌나 하는 방정맞은 생각으로 침실로 가서 수화기를 들고 보니 내 귀에 귀설은 중년 남자의 목소리다. 교육부 위촉의 <초등학교 국어교과서 편찬위원회>의 심의위원이라고 밝힌 그가 나에게 전해준 사연은 위원회에서 내 동극 <숲 속의 대장간>을 금년 9월학기부터 배울, 4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그리고 <행복한 왕자>를 내년 3월의 6학년 1학기 교과서에 수록키로 심의 결정했으니 동의해 달라는, 그야말로 작가에게는 까치소리 같은 희소식이었다.
1967년, 내가 제4차 일본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지 며칠 후 문교부 편수국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그 전화로 내 동극작품 4편이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한꺼번에 실리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이 네 편의 내 동극은 장장 28년에 걸쳐 실려 오다가, 1995년 제5차 교과서 개편 때 사라졌었다.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오늘, 다시 내 작품 두 편이 교과서에 실리게 됨으로써 나는 다시 교과서 수록작가가 된 셈이다. 작가라면 그 누구나 자기 작품 한 편쯤이 교과서 수록되기를 희망하는 마당에 나에게 주어진 이러한 혜택은 내가 아동극 극본 쓰기 외길을 걸어온데 대한 보상인지 모른다.
이번에 다시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는 내 작품을 교실에서 학예회에서 배우게 될 또 다른 수천만의 어린이들이 극적인 수업, 재미있는 수업을 받음으로써 그들 가슴에 동심이란 꿈을 키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산자락에다 묘목을 심어 놓고 백 년을 기다리는 동화 속의 행복한 산지기 할아버지처럼 나도 어린이의 가슴에다 오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천수답(논) 같은 <동심의 샘>을 파 주는 행복한 글쟁이(작가)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 어린이들은 나를 고마운 할아버지라고 불러 주겠지! jjkc053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