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CBS-TV 앵커인 스콧 펠리가 현재 41개의 전쟁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수단과 남부 수단 사이의 전쟁 등 국가 대 국가의 충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무력 대결로 시리아 한 예만 들더라도 100만 이상의 피난민이 양산되었고 10만 이상이 희생된 데다가 몇 십만이 부상을 입은 상태가 아직도 진행형이다. 말이 부상이지 두개골이 손상되어 일생 폐인이 되거나 팔다리가 절단되어 자립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들, 학교가 문 닫혀 교육과 직업 훈련을 못 받은 청소년들의 암울한 장래를 생각해보면 정말 전쟁은 생지옥이라는 표현을 들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전쟁은 보통 때는 정죄가 되는 인명 살상을 정당화 시켜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평상 평화 시의 도덕관과 가치관을 파괴하거나 타락시키는 역기능을 수반한다. 전쟁 때 여성들에 대한 성폭행이 엄청나게 증가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평상시에는 어떤 개인이 사람을 죽이면 최악의 범죄로서 사형감이지만 전쟁 시에는 적으로 규정되는 사람들을 많이 죽이면 죽일수록 영웅이 되어 국가로부터 엄숙한 시상식에서 훈장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런데 인간들 대부분은 어려서부터 가정교육이나 종교적 가르침을 통해 생명은 고귀하다고 배워왔던 것이 전장에서는 피를 흘려도 된다는 아니 많이 흘릴수록 국가의 간성이 되고 후세인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는 결론으로 바뀌자니까 여간한 세뇌 공작이 필요한 게 아니다. 과거로 치면 왕, 현재로 보면 국가에 대한 절대적 충성이 요구되는 가운데 국가의 소명이 있으면 적군을 인간 이하로 낮추어 보아야만 총을 쏴 그의 두개골을 작살나게 하거나 장칼로 그의 배를 찔러 창자가 쏟아지게 하고도 농담을 할 수 있는 뱃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호전주의자들의 선전 목표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사람의 깊이에 따라 많은 유혈 참극을 목격하고 난 전직 지휘관들 중에는 전쟁의 참화를 개탄하면서 전쟁을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40만명 이상의 전사자들을 양산한 미국 남북전쟁 때 남부의 최대 도시 애틀랜타를 초토화시켰기 때문에 남부 사람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던 윌리엄 T. 서만 장군은 이런 말을 남겼다. “총을 한 방도 쏘아보지 못했거나 괴로워 울부짖는 부상자들의 비명과 신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만이 피, 더 많은 복수와 더 많은 파멸을 크게 요구한다. 전쟁은 지옥이다.” 전쟁의 최소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아이젠하워 미 34대 대통령도 전쟁 준비에 쓰여지는 막대한 비용과 그에 뒤따르는 국민 복지의 감소를 개탄했다. “만들어지는 총 하나 마다, 진수되는 전함 하나 마다, 발사되는 로켓 하나 마다 최종적으로 보면 배고픈데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과 추운데 헐벗은 사람들로부터 도둑질 하는 행위이다. 잔뜩 무장한 세상은 돈만 낭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땀, 과학자들의 천재성과 아동들의 장래 소망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로서의 삶이 아니다.”
그밖에도 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전쟁의 모순성을 지적한다. 미국 소설가 헤밍웨이는 “전쟁이 얼마나 필요했거나 얼마나 정당한 구실이 있었거나 간에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인간 세상이 지속되는 한 전쟁은 끝이 없기 때문에 2,300여년전에 살았던 플라도의 다음과 같은 말이 공감이 간다. “죽은 사람들만이 전쟁의 끝을 보았다.”
전쟁의 비정상성을 꼬집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터스의 다음과 같은 말도 정곡을 찌른다.
“평화 시에는 아들들이 아버지들을 무덤에 묻지만 전시에는 아버지들이 아들들을 무덤으로 보낸다.” 미국의 대공황 때문에 기억되는 허버트 후버 31대 대통령의 말도 그와 비슷하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선언하는데 싸우고 죽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이다.” 불란서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경제학적 해석을 가미시킨다. “부자들이 전쟁을 일으키면 죽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비폭력 저항운동의 창시자 간디는 전쟁 피해자들의 불쌍함을 이렇게 설명한다. “광기가 가득찬 파괴가 전체주의 이름으로 초래되었건 또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신성한 이름으로 초래되었건 간에 죽은 자들과 고아들과 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에게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충돌은 가자에 사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게 참혹한 피해를 안겨주고 있다. 하마스가 민간 시설을 이용해서 이스라엘 쪽으로 로켓을 수없이 난사하는데 대한 대응으로 이스라엘은 정밀 폭격으로 맞서고 보니 이스라엘 사망자 수는 40여명 내외인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300명 이상이고 그중 75%가 기저귀찬 아이들을 포함한 부녀자들이라서 아랍권만이 아니라 유엔의 규탄마저 받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상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하마스의 정책이 지속되는 한 가자 지구 문제의 해결은 전도요원하다. 전쟁이 없는 세상은 언제나 올까. <변호사 MD, VA 301-622-6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