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김판겸 기자 ㅣ 짓밟힌 ‘조선의 딸들’

2014-07-22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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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든여덟 살 평창 출신 김군자(88) 할머니.

김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다. 17살 꽃 같은 나이에 중국 훈춘의 위안소로 강제 동원됐고 3년이라는 죽음보다 더한 시간을 견뎌냈다. 기구한 삶에 치인 김 할머니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고 7번이나 시도하면서 질곡의 세월을 버텼다. 기자가 이런 사연의 김 할머니를 만난 건 2007년 2월, ‘내가 살아 있는 동안’(As Long As I Live)을 주제로 SF 정치교육센터에서 있었던 일제 만행 고발 증언 집회에서였다. 당시 그분의 첫 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1926년생 김군자입니다. 또 창피스러운 거 얘기 하겠군요.”그 말에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김 할머니가 대중 앞에서 본인이 말한 “창피한 얘기”를 되뇌고, 지워지지 않는 고통을 말하는 데는 일본의 만행과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일념 때문이다.

당시 인터뷰에서 김 할머니는 일본군에게 뺨을 맞은 게 잘못돼 한쪽 고막이 터져 큰 소리가 아니면 잘 듣지 못했다. 이처럼 군 위안부로 강제동원 돼 인생을 참혹하게 유린당했고, 과거의 상처 속에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그와 다른 피해자들에게 일본정부는 고노담화를 훼손하는 결과를 내놓았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천인공노할 죄악을 또 저지르고 있다.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흡사 백주대낮에 사람들 앞에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거리를 활보하면서 “내가 누구 죽인 거 봤냐”고 우기는 꼴이다. 철면피도 지독한 철면피다.

한국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37명이다. 이중 생존자는 이제 54명밖에 남지 않았다. 생존자 할머니들의 증언이야말로 날조로 얼룩진 일본군 공문서보다 훨씬 강력한 증거사료가 된다. 하지만 피해자 대부분이 80대 후반에서 90대 초반의 고령이다.

일본정부는 역사의 증인들이 사망하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모든 피해자들이 일본의 버티기와 시간 앞에서 보상과 사과도 받지 못하고 떠나게 될지 모른다. 시간은 이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때문에 미국 거주 한인들과 한국정부가 더욱 강하게 미 주류사회와 국제사회에 위안부의 실체를 고발해야 한다.

독도광고가 뉴욕타임즈에 실리듯이 다각도로 접근해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일본은 부끄럽지도 않나요. 내 모진 세월 돌려주세요. 한이 너무 많네요.”라며 울분을 토해냈던 김군자 할머니와 성노예로 짓밟힌 ‘조선의 딸’들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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