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이윤선 ㅣ 생각의 힘
2014-07-16 (수) 12:00:00
레바논 중부 지방 농경지대 농부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다. 두 사람씩 한 조가 되어 마주 앉은 채 가운데에는 칸막이가 있어 서로 얼굴은 볼 수 없고 목소리만 들을 수 있도록 했다. 한 농부가 앞에 놓인 열 개의 막대기를 하나씩 집어 든 다음 상대편에 앉은 농부도 같은 막대를 집을 수 있도록 설명했다.
‘둥글게 생긴 거’, ‘가시 박힌 거’, ‘대나무로 만들어진 거’, ‘조금 긴 거’ 등. 첫 번째 실험에서 같은 막대를 집어든 적중률이 매우 낮자 다시 시도했다. 두 번째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두 차례의 시도에도 적중률이 높지 않았던 것은 막대기에 대한 묘사가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전통적으로 그들은 집단 노동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고 한다. 이러한 집단 노동 사회에서는 다함께 정보를 공유해 새로운 정보에서 소외되는 이가 없기에 무엇을 새롭게 가르쳐주거나 알려주는 의사소통의 방식이 배제되어 왔다.
그러므로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준다는 것은 그들에게 생소할 뿐 아니라 상당히 어려운 과제였던 것이다. 이들처럼 언제나 정보를 함께 공유하고 정보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문화권에 살고 있다면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방식은 별반 필요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오로지 외부로부터 주어질 물질적 보상에 대한 기대로 말미암아 논리성이나 비판 능력은 미처 발달될 여지도 없다.
생각하는 힘은 쏟아지는 말의 홍수 속에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을지를 결정하게 하는 힘이다. 이러한 결정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지에서 시작해 정치적 견해나 소신을 확립하는 일까지 다양할 것이다.
21세기에 바라는 생활 속의 발명품으로 인생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가 꼽힌 적이 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예상되는 장단점을 입력하면 보다 나은 성공의 가능성이 있는 쪽으로 인생의 선택을 도와주는 것이다.
21세기, 우리 아이들은 과연 인생의 기로에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돌려 진위를 구분하고 최상의 선택을 내리게 될 수 있을까?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말할 수 있는 진실, 옷이 보이지 않음을 근거로 휘황찬란한 옷을 입었다는 허구를 밝힐 수 있는 아이, 옆집 대감의 사랑방 창호지 문에 주먹을 불쑥 들이밀며 누구 주먹인지를 물었던 아이들의 논리성과 비판 능력을 과연 소프트웨어가 대신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