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들이 당한 비극은 더이상 안됩니다”
2014-07-16 (수)
9살난 아들을 몽골 땅에 묻어야 했던 탈북자 유상준 씨. 그가 오랜만에 미국을 방문했다.
숱한 미국 초청을 여러 이유로 거절해오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뿌리치지 못했다. 미주 한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메시지도 있는 탓이었다.
워싱턴에 온 공식적인 목적은 14일부터 시작된 KCC(미주한인교회연합) 북한인권 캠페인에서 증언하는 일. 첫날 청소년 인턴들에게 영화 ‘크로싱’에서 소개됐던 자신의 기막힌 사연을 얘기해줬고 둘째 날에는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열린 기자회견의 첫 연사로 나선 유 씨는 두 아들과 아내를 잃어버린 가장으로서의 슬픔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목이 메었다. “나처럼 어린 자식을 비참하게 잃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와 함께 “북한 주민들이 진정한 자유와 인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김정은 정권이 무너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들 철민이가 당한 희생이 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중국에 들어가 탈북자 구출에 주력했다. 매달 7-8명의 탈북자, 혹은 아이들을 탈출시켰다. 유 씨가 마련한 쉘터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매달 들어와 보호를 받았다.
그러다 한 번은 조선족에게 속아, 또 한 번은 어처구니없게도 탈북자에게 당해 중국 공안원에게 체포됐다. 두 번째 체포 때는 묶인 채 24시간 동안 매질을 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유 씨는 지금도 일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몸이 망가진 상태다.
“중국을 다시 들어갈 수는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있습니다.”
그게 바로 풍선 날리기다. 작은 기구처럼 된 풍선에 전단과 초코파이 등 먹을 것을 담아 보내는 것이다. 날아온 전단을 함부로 보거나 소유했다간 큰 형벌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외부세계의 실상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고 마음을 돌리는 데는 이것처럼 효과적인 게 없다. 북한 정권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풍선 날리기를 비난하는 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위협적으로 본다는 뜻이다.
“문제는 풍선을 날리는 사람들이 제대로 못할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는 풍향도 잘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풍선을 날리면 되돌아와서 엉뚱한 데 떨어질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종종 한국 해안에서 풍선의 잔해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들려오기도했다. 유 씨는 나름 고생하며 연구해 이제 전문가가 됐다. 풍선이 목적지에 근접해 떨어지도록 하는 기술을 터득했다. 우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대기 이동의 패턴의 파악했고 풍선이 적절한 고도에 올라가 날아가다가 일정한 지점에서 떨어지도록 터뜨리는 타이머까지 개발했다.
지난 5월 인터넷 조선일보(www.chosun.com)가 평양 인근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한 풍선 잔해는 유 씨가 만들었던 것임이 확인되면서 더욱 자신을 얻었다.
하지만 일 년에 풍선을 띄울 수 있는 날짜는 약 30-40일 밖에 안 된다. 그것도 봄철인 5월부터 8월까지에만 가능하다. 한 개당 비용은 55만원에서 60만원 정도. 하지만 유 씨의 빠듯한 살림에 이것도 벅찬 액수다.
“목숨 걸었습니다. 아니 저만 그런게 아니라 국민적인 운동으로 번졌으면 좋겠습니다.”
구호로만 북한 인권을 외쳐서는 안 되고 무언가 실제적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유 씨는 믿고 있다. 외부 초청을 잘 응하지 않는 그가 이번에 미국까지 오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미주 한인사회에도 풍선날리기의 중요성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워싱턴 뿐 아니라 미 전역에 확산되길 희망하고 있다. 정식 비영리단체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풍선 운동에 ‘인민의소리’라는 이름도 붙였다.
미주에서는 후원, 봉사 조직 설립과 운영을 미주탈북자선교회(대표 마영애)가 맡아 협력하기로 했다.
한편 유 씨는 탈북자 지원, 북한 인권 운동을 할 때 보다 신중하게 해주길 당부했다. 탈북자 행세를 하는 조선족이나 이중간첩 노릇을 하는 탈북자 때문에 두 번이나 중국 공안원에 체포됐던 쓴 경험 때문이다.
유 씨는 “내가 개인적으로 당했기 때문에 예민할 수도 있지만 탈북자 사회의 신뢰를 위해서도 탈북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며 “풍선 날리기 사역도, 정확하게, 투명하게, 바르게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571)318-0859<이병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