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주디 이 ㅣ 시샘과 언니

2014-07-0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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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샘은 자기의 것보다 나은 것을 몹시 부러워하거나 시기하여 지지 않으려 함이요, 시기심은 남이 잘되는 것을 샘내고 미워하는 마음이다. 시샘은 깜찍한 계집아이의 귀여운 마음 일 수도 있으나, 시기심은 파~란 눈만 보이는 검은 고양이 같이 무섭다.

시샘은 자기발전과 도약의 동기 부여가 될 수 있으나 시기심은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자기도 찌르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나는 어릴 적 시샘이 많았음을 미화시키려고 내 나름대로 길게 정의를 내린 것이다.

나는 언니에게 시샘이 많았는데 둘째의 일반적 특성 일 수도 있다. 시샘과 함께 언니를 거의 맹목으로 좋아했다. 언니는 내가 보아도 나보다 예쁘고, 공부도 잘했으며 옹골차기도 했다. 5살에 유치원에 보냈어도 스스로 챙기고 다녔지만 어리버리한 나는 6살에 보냈어도 울어서 떼어 놓고 올 수가 없었단다.


언니가 중학생이 되어 영어책을 들고 다니며, 그때 4학년인 나에게 종종 따라 읽으라고 했던 기억은 하도 생생하여 지금도 웃음이 난다. 온 집안 내에서 맏이인 언니에게 모두의 관심이 집중됨은 나의 시샘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시기하거나 미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언니만 바라보는 것은 여전했다.나는 같은 학급 아이들을 모두 촌스럽게 여기고 손수건 하나 접어들고 다니는 것까지 언니만 따라 했다.

언니는 내게 종종 예쁜 아사 손수건 같은 것을 사주었는데 어린 눈에 아주 고급스럽게 보였다. 언니가 대학생이 되고 나니 더욱 멋있어져 갔다. 흥얼대는 팝송은 왜 그리 감미로운지, 보고 오는 영화 이야기마다 감동적이었다. 특별히 데이트하는 남학생 이야기는 몹시 부럽고 나를 설레게 했다.

유명 양장점에서 맞추어 입은 (그때는 기성복이 없었으므로) 옷은 얼마나 예쁜지, 간혹 내게 물려주면 감지덕지 좋아했다. 언니만 시샘하며 자란 나는 어찌어찌 하다 보니 같은 대학 같은 전공에 같은 전문인이 되어 있다.

그런 언니를 서울에 두고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음은 불가사의 한 일이다. 시샘이나 하던 언니 그늘에서 언제인지 나도 모르게 벗어난 듯 했으나 그래도 처음엔 이곳에서 귀한 것을 보면 늘 언니 생각을 했다. 이제는 시샘이 아니라 언니가 그냥 보고 싶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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