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윤선 ㅣ 탱자

2014-05-07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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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기차에서 만난 시골 어르신들은 풍경화 속의 평화로움으로 기억된다. 그들의 삶이 갈라진 손바닥만큼이나 고달프고 빈궁했을지라도. 그들의 삶에 기차와 비행기, 자동차라는 문명의 이기와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과 6.25 동란이 불쑥 찾아들어 온 격동의 시대였을지라도. 이 시대의 아이들은 컴퓨터와 인터넷과 스마트 폰이 인생에 불쑥 찾아들어 와 문명의 격동기를 겪고 있는 우리를 만난다. 기차와 비행기와 자동차가 원래부터 그냥 그렇게 있었던 소나무나 시냇물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이건만 사이버 공간에 들어서서 보이지 않는 힘과 질서를 따라 헤맬 때면 디지털 사진 속에 들어있는 우리의 풍요로운 모습이 뒷날 아이들에게 평화로움의 풍경화로 남을지 전혀 자신이 없다. ‘네브래스카’라는 미국 영화가 있다. 노년의 아버지의 황당한 꿈을 함께 찾아 나서는 아들의 로드무비다. 영화의 끝 부분에 가면 이미 운전 면허증이 말소된 팔십은 넘었을 것 같은 아버지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중년의 아들이 나온다. 그것도 아버지가 원하는 트럭을 사서 차 소유주를 아버지 이름으로 등록한 다음에 말이다.
아버지는 운전대를 잡고 고향 대로를 운전하며 곁에 앉은 아들을 밖에서 들여다보이지 않게 바닥에 납작 엎드리라고 한다. 창밖에서 자신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옛 동네 친구들에게 거만한 시선을 던지며. 이 영화를 생각하면 운전을 가르쳤던 아들딸이 생각난다. 틈만 나면 혼자 운전하고 싶어 했던. 시간의 수직선 속에 앞부분과 뒷부분이 교차하는 우리의 부모와 자녀.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단다. 중국의 남과 북을 가로 지르는 회수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같은 종자를 심어도 토양과 기후가 다르기에 강북의 귤은 탱자와 같이 작고 딱딱하게 자라게 된다고 한다. 우리의 말과 생각이 거실을 건너가며 귤 같은 사랑이 혹시나 가시 많은 탱자나무로 변하는 것은 아닐지. 아, 그런데 탱자의 꽃말은 추억이라고 한다. 가시에 손 다칠까 가까이 가기 어려운 날에도 마른자리 진자리 갈아 눕혔던 아들딸과, 갈아 누이셨던 부모님에 대한 추억이 꽃향기로 진해지는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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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씨앗을 하나씩 안고 태어났다.
비바람 거칠어도 씨앗의 소망대로 각자 싹을 틔워 꽃을 피운다면…씨앗이 품은 초록을 들여다보는, 긍정의 최대치를 이끌어 내려는 다문화 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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