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홍소영 l 첫사랑
2014-05-01 (목) 12:00:00
“약혼은 번거로우니까 그냥 우리 결혼하자!”
오늘 아침 유치원 때 처음으로 받은 편지를 소개하는 첫사랑에 대한 방송을 들으면서 혼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20대의 유치원 시절이면 족히20년 전 이야기. 깜찍한 아이의 생각을 헤아려보니 갑자기 할머니가 된 느낌이다.
결혼까지 10년을 만나면서 주변 어른들의 독촉(?)에 “사람 안 바뀌니까 걱정 마세요”라며 서른을 넘겼다. 서른하나에 사랑하는 지금의 남편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신부화장을 아침부터 두 번씩이나 해야 했던 해프닝. 화장을 끝내고 머리를 만지는데 부케를 받으러 온 후배가 나를 찾지 못하고 두리번거리자, 키메라(그즈음에는 화장이 무척 진했다)보다 더 무서운 얼굴로 변장한 나는 바로 눈물로 화장을 지워야 했다. 결혼식까지는 3시간 남짓. 피가 마르는 마음으로 두 번째 분장(?)을 마치고 10분전에 식장에 도착. 이처럼 드라마틱한 결혼식을 시작으로 이제는 2주 뒤면 결혼 20년이란 세월을 맞는다. 길고도 길었던 첫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남편에게 달아주며 마음속으로 “마지막까지 해야 하는 사랑도 내 첫사랑이라 부를 거야”했다. 평생 가장 큰마음과 사랑과 시간을 보낼 반쪽의 또 다른 나이기 때문에. 귀하고도 예쁜 첫사랑이라는 이름이 이제는 어울리지 않는 나이. 하지만 언제나 그 이름 앞이면 나는 스물의 거침없는 당찬 숙녀가 된다.
유년의 어린 시절, 폭풍과도 같은 부모님의 무한사랑 때문에 사랑은 그냥 거저 받는 건 줄로만 알았다. 아낌없이 주셨고 아쉬움 없이 받아 누렸다.
남편을 만나 살면서는 주고받고, 받고 주는 건가 하다가, 아주 늦게 아들을 만난 이후에는 확연히 깨달은 명쾌한 한 가지, “첫사랑이든 사랑이든 무조건 주는 거구나”였다. 첫사랑만큼이나 절절한 자식 사랑을 배워가며 아직도 철들고 있는 나는 더욱 천천히 늙어가면서 첫사랑의 홈런을 늦도록 만끽하고 싶다. 이따금 열어보는 한 상자 가득한 깨알 글씨의 편지들은 젊은 날의 초상처럼 아직도 마음을 울리고 처음의 마음을 잊지 말라고 채근한다. 처음 사랑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