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박수잔 ㅣ ‘까미유 클로델’
2014-04-22 (화) 12:00:00
우리는 예술작품을 통해 예술가의 인생과 열정을 느낀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다빈치 등의 작품 속에서 그의 스케일과 집념, 그리고 삶을 느낀다. 특히 남성의 육체에 대한 이해도와 애정은 천재적이다 못해 감탄스럽다. 쇼팽의 아름다운 선율에 사랑을 느끼고 베토벤의 번뇌와 절규하는 듯한 섬세함 등을 우리는 함께 공유한다. 예술작품은 이렇게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많은 조언과 감동을 준다.
‘까미유 끌로델’, 로댕의 연인으로 우리는 그녀를 기억한다. 로댕의 그늘에서 천재적인 기질을 피우지 못한 비운의 여인, 그녀의 작품을 보면 로댕의 작품과 많이 닮아있으나 더욱 섬세하면서도 비통함과 간절함이 묻어나있다. 까미유는 19세에 로댕을 만나 그와 함께 ‘지옥의 문’을 시작으로 많은 로댕의 작품을 작업했다고 한다. 그러나 로댕의 이름만이 나가고 그녀는 항상 로댕의 그늘 속에만 있어야했다. 그녀는 이후 광폭해지고 로댕을 증오하게 되어 작품 활동을 접고 30년간 정신병원에서 엄마와 남동생도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채 외로운 삶을 마감했다.
난 가끔 까미유 끌로델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했었다. 그녀의 뜨거운 작품이 내 머리속의 잔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로댕은 로즈라는 여인과 동거하며 한편으로는 까미유를 그의 작품을 위해 붙잡아놓고 있었다. 까미유는 작품으로 로댕과 로즈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를 간절함과 절망감으로 표현했다. 까미유는 잠시 로댕에게서 벗어나 작품 활동을 했지만 그 시간도 로댕에 대한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여자가 조각하기 어려운 시대에 태어났으며, 독특한 성격과 그녀의 천재성을 알아보지 못한 엄마에 대한 차별, 그리고 로댕을 만나 비극적 삶을 살고, 사라지게 되었다.
까미유의 작품을 보면 그녀의 뜨거운 열정과 시대적, 그리고 로댕에 대한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로댕을 사랑하였다면 이를 승화해 작품으로 만들었더라면, 까미유 스스로가 로댕을 끊어내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당당하게 자신만의 작품을 하였더라면 우리는 또 하나의 천재 여류작가를 기억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광폭해져 해마다 자신의 작품을 부숴버렸다고 한다. 무엇을 위한 작품을, 누구를 위한 작품을 하였을까? 같은 여성으로서 예술가의 길을 고뇌하는 사람으로서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