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홍소영 l 여행

2014-04-1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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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처음으로 계획에 없던 여행을 떠났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처럼 내일 밤을 어디서 묵을지 모르는 하루살이 여행 같은. 캘리포니아 북쪽에 위치한 라센 화산 국립공원을 다녀온 동생에게 “인상 깊었다”는 얘기만 듣고 “여보, 이곳이 아이들에게 그렇게 좋다네”하며 무작정 떠났다. 일정을 마친 밤이면 남편은 컴퓨터 앞에 앉아 내일의 행선지와 숙박을 예약하며 처음 하는 스타일(?)의 나들이를 엮어나갔다. 시작은 언제나 내가, 뒷수습은 늘 남편이 하는데, 지난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3일째 날, 아직도 화산이 살아 부글대는 그곳에 섰을 때 감탄과 놀라움으로 마냥 신기해하며 유황 냄새 자욱한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매일 족히 5마일의 다양한 트레일을 돌며, 특색이 서로 다른 숲과 자연의 부요함 앞에 저절로 마음은 작아지고 소박해졌다. 마운트 샤스타의 화산암에 정수되어 중턱에서 콸콸 샘솟는 물을 마치 약수를 받아먹듯 손으로 떠먹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아주 귀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물을 받아갔다. 바로 옆 동네에 수만 마리는 족히 되는 송어 산란장을 보면서 맑고 깨끗한 환경을 가꾸며 사는 성실한 사람들의 자세를 엿봤다.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화산공원 내 온천 수영장에서 만난 젊은이 두 명 이었다. 멕시코부터 걸어서 캐나다까지(Pacific Crest Trail) 간다는 그들의 ‘걷기사랑’에 대한 얘기는 우리 가족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아들은 놀라움에 연신 질문을 했고, 나는 그들의 순박하지만 예리한 강인함에 매료되어 한참 동안 곁을 지키고 있었다. 무엇을 계획하고 준비해 성취하는 노력의 모습은 언제나 내게 도전이 된다.

Cinder Cone Trail 정상. 날아갈 듯한 바람의 공포가 무서워 사진은커녕 서 있기도 힘든 상황은 난생 처음이었다. 힘겹게 정상을 밟았지만 돌아내려 와야 했다. 멀리서 볼 때는 산꼭대기 하얀 점같이 보였던 산 중턱에 힘겹게 올라가 한여름에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깔깔댔던, 매일 새로운 9일간의 여행을 기억하면 9년은 행복하고 배부를 것 같다. 조금 전에도 새로운 코스를 발견했다. 봄바람을 가르며 두 남자와 자전거로 로스가토스 산까지 데이트를 다녀왔다. 그림 같은 바소나 호수와 숲길을 돌아오며 마음속에 남는 두 글자.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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