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윤원정 ㅣ 방학의 의미

2014-01-08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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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방학이다. 페이퍼 데드라인을 앞두고 머리를 쥐어 뜯으며 글을 써낼 때면 방학을 꿈꿔왔다. 마지막 페이퍼를 교수님 손에 건낼 때의 쾌감은 언제나 짜릿하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있을 땐 ‘아, 이런 게 행복이구나’ 싶다. 하지만 그런 행복감도 길어야 일주일이다.

중학교 때부터 나에게 방학은 학기중에 못한 공부를 더 바쁘게 그리고 더 많이 하는 기간이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들처럼 아침 일찍부터 수학 학원, 영어 학원 그리고 테니스 레슨과 미술 학원 등 학교에 등교만 안할 뿐, 바쁘게 하루 하루를 보냈었다. 그리고 미국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방학 때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아침부터 밤까지 SAT학원에서 정말 치열하고 고달픈 시간들을 보냈었다. 좋은 대학교를 가고 싶은 간절함과 너무 비싼 학원비 때문에 드는 미안함에 단 한번도 쉬지 않고 기계처럼 공부했었다. 가끔 정말 지칠 때면 엄마는 늘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면 방학 때 공부 안하고 놀 수 있다” 하고 즐거운 상상을 하게끔 희망을 심어주셨었다.

그러고 대학교에 왔다. 대학원을 생각한다거나 흔히 말하는 ‘스펙 쌓기’를 위한 인턴쉽을 하고 있다면 방학 내내 매우 바쁘겠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엔 시간이 애매한 겨울방학 때에는 뭘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한 마음이 든다. 매번 방학의 첫 주는 보고 싶었던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잠도 많이 자고 그야말로 시간을 ‘죽인다’. 하지만 그 일주일이 지나면서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불안해진다. 발전의 시간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학기중 때처럼 치열하게 살자니 의지도 살짝 부족하고, 또 아무것도 안하자니 제일 바쁘게 살아야할 지금 시간을 낭비 하는 것 같아 무섭다.

대학교 졸업을 일년 앞둔 지금,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어느 일 하나 오래 하지 못한다. 매일 목표를 세우고, 다음날 불안감과 조급함에 또 새로운 목표를 만든다. 고등학생 때의 방학은 단순히 ‘대학교 입학’이라는 목표 하나로 움직였었는데 삶의 목표들이 더이상 단순해지지 않는 지금은 방학이란 전보다 더 괴롭고 피곤한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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