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전윤재 ㅣ 기다려 줄 수 있는 엄마
2014-01-02 (목) 12:00:00
아이가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엄마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지만, 자연스레 얻게 된 호칭과는 달리 실제로 엄마가 되는 일은 그리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았다. 엄마가 되기 위해서 온갖 시행착오를 통해야만 알 수 있는 육아를 감당해야만 했고 ,아이가 있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자기 성장을 겪어내야만 했다. 아이로 인해 내가 감당해야 했던 성장통 중에 가장 괴로웠고 지금도 가장 분투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엄마로서 아이를 기다려 주는 일이다.
엄마로서의 삶은 기다림으로 시작되었다. 아이의 임신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간을 시작으로 임신에서 출산까지 열달을 기다렸고, 처음 엄마 소리를 할 때까지, 처음 혼자 걸을 때까지, 처음 혼자 책을 읽을 때까지 등등 아이를 기르면서 나는 수도 없는 기다림을 반복해야 했다. 기다림을 수없이 반복했건만 여전히 아이를 기다려 주는 일은 어렵고 서툴기만 하다. 다행히 많은 기다림 중에 내가 배운 것이 한가지 있다면 사람이 다 다르게 생긴 것처럼 아이들은 모두 아이들 고유의 성장시계가 있어 모두 다른 성장 속도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기다려 주는 일이 어렵고 서툴더라도 열심을 다해 아이를 기다려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사실 내가 조급해하고 아이를 채근한다고 해도 아이의 성장시계는 내가 원하는 속도로 빨리 가 주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의 조바심에 아이는 위축되고 엄마의 불안감에 아이는 힘들어져서, 아이의 성장이 더뎌지거나 아이와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속도로 성장이 이루어지는 등 아이 본연의 성장시계가 고장나게 된다.
때가 되면 당연히 아이가 걷고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수많은 실수와 연습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의 “때가 되면” 걷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걷고 말하기 위해 했던 실수와 연습을 기다려 주었듯이 엄마는 아이가 그 아이만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아이들은 실수와 연습을 통해 성장한다. 이때 엄마가 아이에게 충분히 실수하고 연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그 과정을 기다려 주는 역할을 해줘야만 아이가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살 수 있게 된다. 아이가 얼마나 빨리 커가느냐를 보기보다는, 기다릴 수 있는 엄마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밀려가는 성장이 아닌 아이 자신의 동력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