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한경미 ㅣ 어머니의 손

2013-12-30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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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친정엄마가 오셨을 때 손톱과 발톱 관리를 해 드렸다. 관리를 받고 난 엄마는 거의 눈물을 글썽이며 좋아하셨다. 칠십이 넘도록 한번도 하지 못한 일, 돈이 아까워서 생각도 못한 일이었으리라. 친정엄마는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시기도 했다. 엄마의 여자로서 자존감이 회복된 모습을 보며 돈보다 더한 가치를 보았었다. 친정엄마는 손톱을 깎으시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일을 많이 해서 저절로 닳아서 깎을 필요가 없으셨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는 효자손도 필요없었다. 엄마는 손톱으로 긁어주지 않으셔도 손바닥으로만 등을 긁어 주셨어도 너무나 시원했었다. 손이 거칠어 스치기만 해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친정엄마 같은 분이 여기 계신다. 그분은 집에 친척이 왔다고 하면 꼭 한번 들러라고 하신다. 나는 그분을 만나면 친정엄마가 생각나 손을 가만히 잡아 드린다. 이민 오신 지 사십 년이 되신 그분은 장사하시며 자식 키우며 남편 뒷바라지하신 얘기를 들려주신다. 몇 박스나 되는 물건을 혼자 다 정리고 나면 자식을 돌볼 시간도 없을 뿐더러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이민자의 고단한 삶의 여정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분 댁에 가면 항상 밥을 챙겨 주신다. 염치없게도 엄마같이 편해 넙죽넙죽 받아먹다가 문득 그분의 손을 보게 되었다. 류머티즘으로 손 마디마디가 굵어지고 모양이 변형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마당에 있는 가축들에게 밥 주는 것도 힘들다고 하시며 아프다고 하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엄마 같이 편하다고, 좋다고 하면서 밥을 얻어 먹고 있다니…

모든 이민 가정이 그렇듯이 자식 키우는 보람으로 고생을 고생이라 생각하지 않고 사셨다고 한다. 그러다 돌아보니 장성한 자녀들은 제 갈길을 찾아갔고, 본인은 나이 들어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하신다. 나는 처음에는 그분의 무심한 자녀들이 원망스러웠었다. 그런데, 이역 만리 떨어져 사는 나는 그분의 자녀보다 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불쑥 불거져 나온 그분의 손마디를 어루만지며 속으로 말한다. ‘사랑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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