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윤연실 ㅣ 가족이라는 이름

2013-12-27 (금) 12:00:00
크게 작게
모국을 떠나 1세로 타국에서 생활한다는 게 쉬운 일은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누구와 함께 그 길을 가느냐에 따라 가는 삶의 여정의 모습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결혼과 동시에 한국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지만 몇달 즐겨보지도 못하고 미국생활을 결정해 오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1998년은 내 생애에서 가장 격변의 시기가 아니였나 싶다. 결혼 자체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모습이 바뀌는 것인데 거기에 타지생활까지 더해지고 임신까지 하게 되니 얼마나 힘겨웠었는지 모른다. 어느 가정이나 그렇겠지만 나 또한 남편과 아주 사소로운 부분에서 부딪치고 속상해하고, 서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날을 서고 얘기를 해 상처를 주었었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사소한 부분들은 친정집에 얘기하고 신세한탄을 하며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현실로는 남편과 나, 단둘이서 풀어야 하는 문제였기에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이 타지에서 우리밖에 없음을 강조하면서 맞춰나가다 보니 요즘엔 내가 남편의 성격을 많이 닮아가고 남편도 나를 많이 이해해주고 배려해준다. 몇년 전에 남편이 잘 아는 지인과 벤처사업을 한 적이 있었다. 정말 딸아이가 크는 것도 못 볼 정도로 매달렸고 최선을 다해 일을 했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게 끝나게 되었었다.

그때 낙심하며 힘들어 하던 남편을 보면서 속으로 맘 아파하면서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남편과 가볍게 한잔 하면서 푸념을 들어주고 한국의 재미있는 예능 프로를 보며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러면서 남편은 그 시기를 극복해 갔고 늘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 남아 있겠지만 지금에 최선을 다하며 언제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자세를 갖고 생활하고 있다. 남편이 그때 참으로 고마웠다고 종종 얘기해 준다. 오직 가족만이 힘들고 답답한 시기에 위로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존재임을 다시 한 번 느꼈던 계기였다고 말한다. 나는 시련을 통해 강해진다고 믿는다. 물론 그 시련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때 옆에서 함께하는 가족이 있다면 어떠한 강한 시련도 현명하게 넘어갈 수 있다고 경험으로 말해주고 싶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