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김미정 ㅣ 스마트폰 이야기

2013-12-1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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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착찹하다. 건망증이라고 하기엔 자존심이 상하고 그냥 주의력 결핍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자주 일어난다. 떨어뜨려서 액정이 나간 게 두 번, 오늘 잃어버린 것까지 합쳐서 두 번, 총 네 개의 스마트폰을 이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잡아먹었다. 평상시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는데 스마트폰만은 예외인 것을 보니 나하고 궁합이 안 맞는 것이 확실하다고 치졸한 변명을 늘어가면서 황망한 마음으로 이 상황을 소화해 보려고 노력해본다. 또 폰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어떻게 식구들에게 고백해야 할까, 당장 연락 두절을 걱정할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변명해야 하나, 아 일단은 너무 불편하다… 아이들 일정이 어떻게 되더라. 하필이면 약속이 많은 12월의 스마트 폰 부재는 나의 일상을 한순간에 불안하게 흔들어 놓는다.

그동안 망가뜨리고 잃어버린 슬픈 전력으로 인해 아직도 반년이나 남아있는 약정기간 동안 일반 통화와 문자만 가능한 공룡시대 전화를 쓰는 것이 엄마의 부주의에 대한 마땅한 벌이라고 역설하는 두 아들 앞에서 그보다 더 큰 처벌은 없는 양 맘이 천근만근이 된다. 이 상황을 친구들에게 하소연하고 싶어도 기억나는 번호가 하필이면 잔소리밖에 돌아올 것이 없는 남편밖에 없는 이 황당한 사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스마트폰을 설레는 맘으로 손에 쥐고 난 삼 년 전쯤부터 나는 똑똑한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 일 처리 능력은 점점 빨라지고 정확해지는 대신에 정작 기억해두어야 할 전화번호, 생일, 약속들은 스마트폰 의존도가 백 프로다. 머릿속의 케이블을 폰에 접속시켜 놓고는 넘쳐나는 이메일, 뉴스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알지 않아도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잡다한 소음들 속에서 정작 중요한 내 사람의 일들은 점점 더 등한시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황당한 마음을 달래러 들어간 커피샾에서 모두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아무하고도 눈이 마주치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없는 반나절 동안 기계 문명에서 한 발짝 벗어나 살아 보자고 다짐을 해 놓고는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며 크게 역정 내지 않고 너털웃음으로 다시 스마트폰을 연결해 주는 남편 옆에서 나는 즐거워 미소 짓는다. 기억력 나쁜 똑똑한 바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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