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김미정 ㅣ 공연이야기

2013-12-0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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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조용히 숨을 가듬어본다. 복식호흡으로 몸안의 공간을 넓혀놓고 머릿속으로 연주할 곡을 되뇌인다.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호기심어린 웅성거림은 불이 꺼지고 시작을 알리는 안내가 나가면서 기대가 가득찬 팽팽한 적막으로 전환된다. 어깨를 가지런히 세우고 긴장된 가슴을 입가의 미소로 가리면서 드레스를 살짝 들어올리며 무대로 첫걸음을 옮긴다. 자 이제 시작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달만 아니 일주일만 더 연습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램을 비웃으며 공연날은 허겁지겁 이번 주말로 다가온다. 미국 루터란 교회가 주최하는 이번 클래식 음악연주회의 초청공연은 여느 때와는 달리 재미 한인음악인으로의 사명감까지 더해져서 어깨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시험날이 다가올 때처럼 시간이 충분치 않았음을 자책하는 조급한 마음과 새로운 관객들의 냉정한 평가에 대한 기대로 사뭇 떨리는 가슴을 달래며 악보를 정리해본다. 클래식과 현대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우리는 이번 공연에 중세 마드리갈(르네상스와 바로크 초기에 작곡된 비종교적인 성악곡)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그 화음과 이야기의 아름다움이 너무 정교해서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한음 한음, 쉼표하나 쉽게 넘어가지 못하고 분석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작곡자의 마음이 되어서 부딪칠듯 어우러지는 선율의 아름다움에 희열하고 작사자의 시상에 동화되어 그의 시를 노래한다. 짧고 조용한 그 곡을 연습하는데 쌀쌀한 날씨에도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적은 숫자의 우리 챌리스 여성 보컬 앙상블은 모두가 소프라노지만 자신의 영역만을 고집하지 않고 때로는 알토나 테너가 되고 혹은 베이스가 되어서 곡에 따라 자기의 색을 바꾸는 팔색조로 변신한다. 같이 부르는 사람과 최대한 목소리를 맞추고 볼륨을 조절하면서, 눈을 마주보고 서로의 입을 읽으며 우리는 함께 음악을 만든다. 혼자서 튀어서도 안되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도 다 얼싸안고 가야하는 앙상블의 매력으로 성격도 직업도 모두 다른 개성충만한 우리는 챌리스란 이름의 한 옷을 입은 한 사람이 되어간다.

썰물처럼 관객이 빠져나간 공연장에 불이 꺼지면 우리는 또 다시 새로운 날에 함께 부를 새로운 곡에 가슴벅차하며 다음 공연을 준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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