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김미정 ㅣ 터키이야기
2013-11-26 (화) 12:00:00
계절의 변화가 게으른 이곳 캘리포니아도 이맘때가 되면 군데군데 붉고 노랗게 물든 나무들이 나름 겨울 채비를 서두르며 낙엽을 털어내기 시작한다. 썸머타임 해제로 더욱 늦게 터오는 아침과 서둘러오는 저녁에 새롭게 시차적응을 하며 바깥보다 썰렁한 집안에서 겨울파카 하나 껴입고 한해가 또 이렇게 지나감을 지켜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루 단위로 흐르던 시간이 주 단위로, 달 단위로 그러고 나서는 해 단위로 바뀐다는 어른들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것 없이 예언처럼 맞아 떨어짐에 새삼 오늘 하루가 지나감이 아쉽다. 곧 땡스기빙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가면 올해도 한 권 더해지는 앨범처럼 그렇게 기억의 책장 속에 꽂혀지겠지.
미국생활 첫 앨범 한켠에 자리잡은 나의 최초의 땡스기빙은 지금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 없지만 재미있는 추억으로 기억된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와 양가 인사를 다 돌고 지칠대로 지쳐 미국에 있는 신혼집으로 돌아온 바로 다음날이 땡스기빙이었다. 야무지게 우리 생애 첫 땡스기빙 디너를 준비하기로 하고는 부푼 가슴으로 마켓에 가서 제일 작은 터키를 사고 스터핑과 얨, 라스베리까지 장만해왔다.
다른 집에서 얻어먹어본 경험이 많은 신랑의 코치를 받아가며 주부 초보인 내가 만들어낸 터키는 겉보기에는 그럭저럭 기념으로 사진 한장 찍을 정도로 나왔다. 그런데 큰 닭처럼 생긴 것이 왜이리 뻑뻑하고 맛이 없는지… 자존심도 조금 상하고 버리기엔 너무 아까왔던 터키는 다음 날 샌드위치로 변신하고 다음 날은 샐러드로 변신을 거듭하다 급기야는 카레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결정적인 실수는 그 후 십년이 넘게 터키를 입에 안대는데 큰 공헌을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땡스기빙은 다가오고 여기에 네식구 밖에 없는 우리는 고맙게도 매년 가족 같은 친구집에 초대되어 간다. 친구네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 영어가 훨씬 편한 사촌들과 조카들까지 미국이민 1세대에서 3세대에 걸친 스무명이 넘는 거대한 식구들은 살찐 터키와 김치를 함께 곁들여가며 미국식과 한국식의 잡탕 추억을 공유한다. 아이들은 같이 커가고 우리는 함께 나이들어 가면서 나누는 땡스기빙 저녁이 한해 단위로 성큼성큼 다가와도 놀라지 않고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