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김미정 ㅣ 그 사람의 손

2013-11-1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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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때 그 사람이 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 사람의 손이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되었을 때 신랑이랑 같이 간 파티에서 만난 그는 그런 포멀 파티 문화가 생소해서 신랑 옆에만 꼭 붙어 있던 나에게 성큼성큼 큰걸음으로 다가와서는 악수를 청했다. 쑥스럽게 손을 내미니 따뜻하고 커다란 두손으로 내 손을 덥석 힘있게 감싸며 함박웃음으로 나를 반겼다. 그렇게 크고 따뜻하고 힘있는 악수는 내 마음을 얼마나 포근하게 했는지 모른다. 10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에 그 사람의 악수가 내게 준 것은 인사만이 아니었다. 위안이며 환한 반김이었고 소속감이었다.

사람 몸의 온도는 36.5도로 서로 비슷한 것에 비해 우리 손의 온도는 성별에 따라 기후에 따라 혹은 그때의 호르몬 변화에 따라 참 많이 다르다. 손의 생김새도 눈송이처럼 어느 한사람도 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온도와 생김에 상관없이 서로 맞잡은 두손은 첫인상처럼 짧은 순간에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굳은살이 많이 박힌 손은 열심히 사는 분이구나 싶고 부드러운 손은 자기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구나 싶다. 따뜻한 손은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차가운 손은 꼭 감싸주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힘있는 악수는 그 사람을 더 커보이게 만들고 빈약한 악수는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한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거나 고마운 분들을 마주치면 우리는 손부터 얼싸안고 잡은 그 손에서 서로의 지나온 삶을 읽고 반가운 마음을 전한다. 지치고 힘든 친구를 보면 가만히 손을 얹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눠준다. 기억하는가. 떨리는 가슴으로 몇번을 망설이다 살며시 잡은 연인의 손을.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아기가 그 조막만한 손으로 당신의 손가락을 꼭 잡은 그 찬란한 순간을...그러고 보면 우리의 손은 천마디 말보다 더 깊은 감동과 위로와 정을 전해주는 것 같다. 내 손을 가만히 내려다 본다. 우리 집안 대대로 이어오는 내력으로 살이 없고 힘줄이 두드러져 별로 매력없게 생겼다. 그래서 사람들과 인사하며 손을 맞잡을 때는 더더욱 정스럽게 힘있게 하려 한다. 상대방이 못생긴 내 손이 아니라 잡은 내 손의 체온을, 내 진심을 더 오래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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