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전윤재 ㅣ 나는 주부다

2013-11-14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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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부다. 특별한 자격증이 요구되는 직업도 아니고, 이 직업을 위한 별도의 교육과정이 개설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사회에 대한 공헌도가 현격한 직업도 아니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업을 일등부터 꼽아보자면 아마 그 끝에서도 찾기 어려운, 늘 공문서 직업란에 이걸 써도 되는걸까 하면서 적게 되는 어쩌면 직업이라고 말하기에는 망설여지는 ‘주부’가 내 직업이다. 가끔 누구나 할수 있고, 누구나 될 수 있는 주부라는 일을 하자고 그 오랜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경쟁을 한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면 나는 참말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삶을 산 것만 같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삶은 효율성이라는 잣대를 넘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주부’라는 두 글자는 사실 내가 이곳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일이나 현재의 나를 담아내기에는 야속하리만치 짧다. 하지만 그 두 글자가 나의 지나온 삶과 지금의 나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해서 내 직업을 서글프게 바라보거나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다. 이 세상 어떤 직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가능할까. 직업이 내 삶의 많은 면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직업 하나만으로 복잡다단한 인생사를 담아낼수 있을 만큼 인생이 단순하다거나, 인생에 있어서 직업이 차지하는 가치가 다른 가치들에 비해 월등한 것은 아니다. 만일 내 인생의 결과가 ‘직업’이라고 믿는다면 -내 인생의 결과가 ‘주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으므로-현재 주부라는 내 직업에 대해 불편해하고 후회해보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하지만 내 인생의 결과가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재 내 직업에 대해 불편해 하는 것 만큼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다. 나는 직업이 아니고 직업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삶의 결과를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은 내 경험과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아져 이르게 된 곳이다. 직업은 현재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이고 현재 내가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할 내 삶의 터전이다. 어느 곳을 향해 가든 결과를 알지 못하고 가기 때문에 기대감을 가지고 걸어갈 수 있음을 기억한다면, 또 내가 지금 내 삶을 감사하며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가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 직업 때문이었음을 기억한다면 여지껏 생각해보지 못한 ‘주부’라는 두 글자에 담긴 매력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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