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윤원정 ㅣ 슬럼프에 대해서

2013-11-13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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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느닷없이 찾아오는 이유없는 불안함과 끝이 보이지 않는 무기력함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슬럼프의 증상들이다. 곰곰히 생각해 봐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 그 불안감의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하기엔 너무나 힘이 없고 의지도 부족해 답답한 날들이 계속되는 슬럼프의 기간은 참으로 괴롭고 우울하다.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선 ‘Sophomore Slump’라는 대학교 2학년 때 많이들 겪는 슬럼프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특히 버클리에선 2학년 말 또는 3학년 초에 전공을 확정하는데, 아마 전공 선택에 앞서 밀려오는 두려움과 불확신함이 이 ‘소포모어 슬럼프’의 원인이 아닐까 싶다. 나는 ‘Freshmen fifteen(대학1학년생이 되면 평균 15파운드 늘어난다)’과 같은 마치 대학생활의 필수 과정과 같은 ‘소포모어 슬럼프’에 대해 알지 못했었다.

작년 이맘 때쯤, 나는 수업이 너무 가기 싫어졌다. 생물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기 앞서 이수해야 하는 필수 과학 과목들과 다른 생물 관련 과학 수업들을 듣고 있는 상태였다. 어려운 수업 내용과 생각만큼 나오지 않는 낮은 시험 점수들은 정말로 절망적이었다. 아마 두번째 유기화학 시험 점수를 받은 후부터 슬럼프에 빠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작년 이맘 때쯤 버클리는 매일같이 비가 왔고, 날씨도 쌀쌀하고 꽤나 울적했었다. 제일 두렵고 좌절했던 것은 꽤 오래 전부터 확신이 있었던 대학생활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계획으론 난 분명히 생물학을 좋아하고 또 점수도 잘받고 Biology degree를 받고 졸업해야 하는데, 점수도 점수지만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학업에 대한 싫증이 참 낯설었다. 전부터 좋아하던 문과 전공으로 바꾸기까진 참 많은 고민과 친구들과 가족과의 대화가 오고 갔다. 결과적으로 지금 돌이켜봤을 때 나의 ‘소포모어 슬럼프’는 정말 괴롭고 절망적인 하루하루의 연속이었지만 ‘나’에 대해 더 생각하고 알아갈 수 있었던 나름 유익했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슬럼프는 여전히 두렵다. 슬럼프의 증상이 밀려올 때, 마치 늪에 서서히 빠지는 듯한 그 기분은 언제나 괴롭다.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 힘든 시간들은 원인이 무엇이든 찾아올 것이고 두렵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것들을 배울 거라 희망을 가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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