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간의 바다] 나효신(작곡가) l 이제는 추수를 할 시간…

2013-11-10 (일)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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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 전에 54번째 생일을 맞은 내가 ‘45세면 좋겠네’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더니, 몇 주 후에 61세가 될 남편이 ‘난 16세면 좋겠네’, 하고 맞장구치는 바람에 나의 실없는 농담은 바람 빠진 풍선이 돼 버렸다.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다가 나는 문득 내가 추수기(秋收期)를 맞이하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내 의지와 무관하게 뉘집 자식으로 태어났던 나는 여러 모양의 인연에 따라 삶을 형성해 왔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내가 미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잠깐만 봐도 우리 두 사람의 문화적 배경의 차이를 단박 느낄 수 있다.

남편이 나를 부른다 - ‘일루와봐!’(한국어로!)나는 대답한다? “I’m coming!”(영어로!)
나는 분명히 그가 있는 방으로 ‘가면서’(going) ‘온다’(coming)고 말한다. 그것이 영어권 사람들의 표현법이기 때문이다.


내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것을 배우고 지켜 주는 것… 문화적 배경이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이 가족(혹은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 적에는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단일 민족’끼리 결혼했다고 아무 노력도 없이 곧장 행복의 나라로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태어난 이상 어떤 형태로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마 기본이 아닐까?
우리는 지난 5월말에 뒷마당에 콩씨 여덟 개를 심었다. Scarlet Runner Beans라는 이름의 이 콩은 수평으로는 자라지 않고 수직으로만 뻗어 올라가는 성격을 갖고 있다. 실을 수직으로 매어 놓았더니 콩 줄기 하나는 왼쪽 실을 칭칭 감고 올라가고, 또 하나의 콩 줄기는 오른쪽 실을 타고 올라갔다. 그러다가 한쪽 줄기가 옆에 있는 실로 훌쩍 옮겨가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옆의 줄기도 다른 실로 옮겨가서 가위표(X) 모양으로 엉켜서 자랐다. 한동안 그렇게 자라다가 다시 원래의 실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되돌아가지 않기도 해서 몹시 복잡하게 엉킨 덩굴은 엉킨 채로도 위로만 위로만 자라났다. 채 여물지 않은 콩깍지를 많이 따 먹은 후에도 시월말에 우리는 약 일천 개의 짙은 보라빛의 보석처럼 예쁜 콩을 수확했다.

작은 콩씨 여덟 개는 큰 콩씨 일천 개로 돌아왔다. 그런데, 여덟 개의 콩씨 중에서는 미처 싹을 틔우지 못한 콩도 두어 개는 있었던가…
친구들이 하나씩 둘씩 며느리를 보고 사위를 보기 시작했다. 자식으로 살던 사람들이 부모가 되어 살다가 또 연습 없이 곧장 내 자식의 배우자에게 또 하나의 부모가 되는 시기인 것이다. 곧 할머니도 되겠지…
나는 약 15년 동안 아주 조그만 집에 살면서 밥상과 책상의 구분이 없이 살았다. 식사 시간이 되면 오선지와 책들을 쓰윽 밀쳐 놓고 밥을 차려 먹고, 밥상을 치우고 나면 그 자리에 랩탑을 올려 놓고 쓰다가, 다시 오선지를 펼치기 위해 랩탑은 밥상 밑으로 내려놓곤 했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90여 개의 작품을 썼다. 작품이 끝나갈 적에는 기쁨과 섭섭함으로 두 다리가 후들거렸고… 새 작품을 꿈꾸며 온밤을 새우고도 다음날 종일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일을 했었다. 지금은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상당히 기분 좋은 방이 따로 생겼지만, 난 아직도 밥상에서 메모를 하고 독서를 하고 작곡하길 즐겨 한다.

노력해서 이룩한 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나,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수확의 시기를 맞고, 열심히 일한 후에는 휴식의 시간도 갖게 된다. 싹을 틔우지 못한 노력도 있었고… 풍성한 결실을 봤던 노력도 있었다…
이 가을에 혹시 멀리서 찾아오는 벗 한 사람이 있다면 정성껏 키운 콩을 넣어 지은 밥으로 한끼 대접하고 싶다. 조심히… 겸허히… 감사히… 수확의 시기에 평상심(平常心)을 유지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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