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s nearer to me than I am to myself.
하느님은 저 자신보다 저와 더 가까이 계십니다.
--------------------------------------
아침 산책 길에 하나 둘 낙옆이 딍굽니다.
아직 붉은 색 어린 단풍(丹楓)은 아닙니다. 그래도, 가을이 바로 저만치에 있음을 느끼게 하는 분홍빛 잎새들이 심심찮게 밟힙니다. 가만히 걸으며 가슴 안으로 듭니다. 몸 밖의 사위가 내 안의 허공과 하나됨을 느끼면, 말 너머의 실존이 내 안에 성성히 계심을 감지합니다. 그리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God is nearer to me than I am to myself."
나보다 나에게 더 가까이에 계신 하느님. 과연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누구보다 더 가깝게 존재한다는 것일까요? 성 아우그스티노는 ‘내 가슴들 한 복판에"라는 표현을 썼지요. "In my heart of hearts, God is closer to me than I am to myself."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보다 훨씬일찌기 거의 같은 말씀을 했던 아우구스티노 성인.
’closer to me than I am to myself’와 ‘nearer to me than I am to myself’, 똑같은 말씀입니다.
’가슴들’이란 복수 명사가 눈길을 끕니다. 내 가슴이 하나가 아니란 심오한 표현에 끌립니다.
누군가 노래에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는 멋진 가사가 있던데, ‘내 가슴들’이 그렇게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그 한 가운데’ 하느님이 나보다 나에게 더 가까이 계시다는 겁니다. ‘heart’는 심장/가슴/마음이란 뜻도 있지만 동시에 ‘정 중앙’ ‘한복판’ ‘심장부’란 뜻도 함의합니다. 따라서, "In my heart of hearts,"라는 표현이 보통 의미심장한 말이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
God is nearer to me than I am to myself.
하느님은 저 자신보다 저와 더 가까이 계십니다.
--------------------------------------
초가을 하늘이 저토록 높으니 하느님을 생각합니다.
파랗다 못해 진짜 하늘 색 하늘 속에 하느님을 봅니다. 하나 둘 떨어져 땅 위에 구르는 초록색 낙엽들에서도 하느님을 봅니다. 돌 밑에도 나무 안에도 고루 계신 하느님. ‘무소부재(無所不在)’의 신을 ‘the Omnipresent God’라 하지요. 대한민국에선 흔히 쓰는 ‘유비퀴터스’[ubiquitous]란 말도 ‘어디에나 계신’이란 멋진 단어입니다. 따로 어디랄 것도 없이, 없는 곳 없이 두루 계신 하느님, 그래서, ‘나보다 더 나에게 가까이 계신’ 하느님은 종종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선가(禪家)에 회자되는 말로 ‘간각하(看脚下)!’란 표현이 있습니다. 발 밑을 보라! 멀리 찾는 게 바로 발 밑에 있다는 겁니다. 초롱불 꺼진 밤길을 가려면 발치를 잘 살펴야 합니다. 캄캄한 인생길을 걸으려면 “조고각하(照顧脚下)”라, 발치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발치를 잘 살피다 보면 문득 저 멀리에서 찾던 ‘그 것’이 보이기도 합니다. 밖으로 찾던 보살이 바로 버선 발로 뛰어나와 나를 반기는 속가의 모친이란 얘기죠.
“What lies behind us and what lies before us are tiny matters compared to what lies within us.” 제가 자는 방 화장실 벽에 걸려 있는 말씀입니다. 적어도 하루 한 번은 꼭 보게 되는 말씀입니다. 10년 넘게 걸리다 보니 가끔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늘 늠름하게 벽에 우뚝 서 있는 녀석입니다. "우리 뒤에 놓인 것과 우리 앞에놓인 것, 이건 우리 안에 놓인 것에 비하면 모두 사소한일일 뿐이다."
---------------------------------------
God is nearer to me than I am to myself.
하느님은 저 자신보다 저와 더 가까이 계십니다.
--------------------------------------
밤새 떨어진 낙옆들이 새벽 안개와 아침 이슬로 눅눅한 길을 걷습니다. 하늘과 땅과 안개와 이슬과 낙옆과 나무들 사이로 ‘그 분’의 존재를 느끼던 중, 언뜻 ‘나보다 더 나에게 가까이 계신 그 분’의 실존을 이해할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누가 나보다 더 나에게 가까울 수 있겠는가? 바로 그런 우문(愚問)이 깨지고 아상(我相)이 허물어진 찰나, 말과 생각 너머의 실존, 그 그림자가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God is at home. It’s we who have gone out for a walk.” “하느님은 집에 계십니다. 산보를 나간건 우리들입니다.”안에 계신 하느님을 밖으로 찾아 다니는 우리를 예리하게지적하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참으로 거룩한 깨우침이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아침, 신묘한 밖 기운에 감전된저에게 ‘저보다 저에게 더 가까운 그 분’께서 “수보리야!” 하시는 듯 부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