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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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위해 마음의 공간을 여는 자세”

2013-08-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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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편성과 개인의 경험 연결 누구나 감동받을 만한 작품

▶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질 뿐 타고난 차별주의자는 없어

스타 인터뷰

`리 대니얼스의 버틀러 ‘오프라 윈프리’

트루먼 대통령에서부터 레이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8명의 미 대통령의 버틀러로서 34년간 백악관에서 일한 유진 알렌의 삶을 다룬‘리 대니얼스의 버틀러’에서 알렌의 골초 술꾼 아내 글로리아로 스크린에 15년 만에 복귀한 오프라 윈프리(59)와의 인터뷰가 12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서 있었다. 흑인 리 대니얼스가 감독한 이 영화는 16일 개봉, 첫 주말 흥행 1위를 했는데 여기에는 윈프리의 유명세와 그녀가 맹렬히 활동한 영화 선전이 크게 기여했다.‘오프라 윈프리 쇼’의 사회자로 유명한 윈프리는 볶은 사자머리를 한 채 건강한 체구로 인터뷰장에 나타나 굵고 큰 음성으로 농담을 섞어가면서 질문에 길고 진지하게 답했다. 두 손으로 활발한 제스처를 써가면서 마치 강의를 하듯 열과 성을 다해 흑백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인터뷰가 즐겁고 재미있다는 듯이 즐겼는데 아주 친절하고 상냥해 크게 호감이 갔다. <박흥진 편집위원>
*처음에 각본을 받고 느낀 점은.


- 처음엔 다소 걱정이 되었다. 너무 오랫동안 연기를 안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연기 대한 걱정은 대니얼스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다. 난 대니얼스의 영화 ‘프레셔스’를 보고 감동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대니얼스는 내게 연기를 계속할 것을 종용하면서 여러 각본들을 보내 왔다. 그래도 마음을 못 정하고 있을 때 이 영화의 각본을 읽었다. 각본이 정말 좋았으나 글로리아가 우는 장면이 많아 내가 그 장면들을 제대로 해낼 지가 걱정이 되었다.

그랬더니 대니얼스가 내게 연기 코치 수전 뱃슨을 소개해 줘 그녀를 만났는데 뱃슨은 나와 한동안 얘기를 나누더니 내게 당신은 글로리아처럼 내면에 취약한 공간을 지니고 있어 그 역을 잘 해낼 수가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 역을 맡기로 했다.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인가.

- 사람들을 위해 당신의 마음의 공간을 열라는 것이다. 내가 오프라 쇼에서 항상 추구하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얘기를 통해 스스로를 볼 수 있도록 그들과 그들 자신의 얘기를 연결시켜 주는 것으로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난 영화의 각본을 읽고 깊이 감동해 그 얘기와 나를 연결시킬 수가 있었다. 보편성과 인간적 경험을 다룬 얘기여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특히 부드러움과 사랑과 함께 상호 연결되면서 아프리칸 아메리칸을 진짜 사람들로 또 가족으로 볼 수 있도록 깨우쳐 주는 작품이다.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미국의 역사를 이해하기를 바란다. 불과 얼마 전에 백인에게 린치를 당하던 흑인이 백악관의 주인이 되는 역사를 지닌 미국은 경이로운 국가다. 난 사람들이 이런 역사가 지닌 깊이와 너비와 의미와 함께 그것의 영혼과 가슴을 읽기를 희망한다.


*영화에서 알렌은 남의 눈에 안 띄는 사람으로 처신하라는 지시를 받는데 당신은 직접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 눈에 안 띄는 것뿐만 아니라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지시였다. 그러나 난 그런 경험은 없다. 난 영화를 통해 그 것에 대해 전에 가져보지 못한 생각을 하게 됐다. 과거 흑인들 그 중에서 특히 여자들은 자신의 정열과 달리 모든 것을 억제하며 살아야 했다. 하고 싶은 말도 못하며 살아야 했다. 그런 점을 볼 때 하고 싶은 말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난 정말로 복 받은 사람이다. 그러니 난 사실 안 보이는 여자의 반대다.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는가.

- 도대체 검다는 것은 무엇인가. 난 모든 사람이 얼굴을 알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인종차별은 받지를 않았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분위기에선 나도 그것을 느낀다. 유일한 흑인으로 이사회에 참석했을 때 사람들이 저 여자가 도대체 여기서 무얼하는가 하고 묻고 있는 분위기를 느끼곤 한다.

다른 경험 하나를 소개하겠다. 얼마 전 취리히에 갔을 때다. 그 때 난 고급 양품점에 가방을 하나 사려고 들어갔다. 거기서 높은 곳에 있는 가방이 마음에 들어 점원에게 그것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이 여자가 “그것은 굉장히 비싼 것”이라면서 그보다 싼 가방을 보여주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3만8,000달러라는 것이다. 난 점원과 다투고 싶지 않아 아무 말 안 하고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1990년대 말 뉴욕에서도 상점에 들어가려고 벨을 눌러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들의 문제이지 스위스 국민과 미국인들이 모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뜻은 아니다.

*영화에 나오면서 어떻게 유명한 오프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는가.

- 나도 그것이 걱정됐다. 내가 너무 잘 알려져 현대 영화에서의 역을 하기보다는 이 영화처럼 시대극에 나오는 것이 훨씬 낫다. 글로리아 역은 나와 너무 달라 난 그저 그 역에 날 던져버리려고 애를 썼다. 나를 잃어버리고 글로리아를 위해 내 몸을 사용해 그녀가 날 가득 채우도록 했다. 담배를 안 피우는 내가 골초가 되기 위해 끽연 연습을 두 달간이나 한 것이 하나의 예다. 처음엔 담배를 거꾸로 물어 대니얼스로부터 핀잔을 받았다.

*왜 영화 출연이 뜸한가.

- 쇼를 비롯해 하는 일이 너무 많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도 촬영이 끝나면 쇼의 인터뷰를 해야 했다. 그리고 난 의미가 있고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만 하고 싶다. 특히 아프리칸 아메리칸 경험에 의미가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영화를 위해 몇 차례나 인터뷰를 했는가.

- 어떤 날은 하루에 52번이나 했다. 난 인터뷰를 매번 흥미 있고 또 새롭게 하려고 노력한다.

*3만8,000달러짜리 가방을 살 용의는 있는가.

- 절대로 없다. 그 액수는 자동차를 사거나 가족 휴가를 가거나 또는 세계 여행을 할 수 있는 돈이다.

*러시아에 망명한 에드워드 스노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그를 인터뷰할 용의는 있는가.

- 물론 인터뷰하고 싶다. 그런데 내가 그만 트위터로 그와 인터뷰를 할 내용을 내보냈다가 이를 본 스노든으로부터 인터뷰 거절 통보를 받았다. 그래서 다음 기회를 위해 그에 대한 내 의견은 말 안 하겠다.

*당신은 보통 가정주부가 될 생각은 없는가.

- 난 결코 그럴 수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난 세계를 향해 얘기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난 가정주부가 되는 것에 대해선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당신은 구두를 몇 켤레나 가지고 있는가.

- 솔직히 말해 너무 많아 알 수가 없다. 많은 구두를 남에게 주거나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사람들은 피부 색깔에 상관없이 모두 타고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보는가.

-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되도록 배운 탓이다. 부모의 인종에 대한 의견에 영향을 받지 않은 어린 아이들을 한 방에 넣어보면 그들이 얼마나 정답게 함께 잘 노는지를 알 수 있다.

*마틴 루터 킹은 가사를 비롯해 근로의 중요성을 말했는데 당신의 이에 대한 의견은.

- 나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하녀였고 증조할머니는 노예였다. 할머니의 나에 대한 가장 큰 꿈은 나를 잘 대해 줄 착한 백인 집의 하녀가 되는 것이었다. 하녀인 할머니로선 그 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이발사로 그의 꿈은 이발소를 하나 차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가사 일꾼과 근로자의 어깨를 디디고 성장한 셈이다. 우리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가사가 우리 문화에 미치는 역할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근로자의 집에서 자라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 여러분과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오프라 쇼를 지난 30년간 하면서 가장 놀랐던 일은.

- 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놀라는 것은 딱 질색이다. 그런데 내 40세 생일 때 우리 쇼의 팀들이 날 놀라게 한다고 방송을 할 때 글래디스 나이트와 아레사 프랭클린을 초청한 뒤 내가 무서워하는 풍선으로 무대를 가득히 채웠다. 난 풍선을 아주 무서워하는데 그것들이 언제 터질지 몰라 안절부절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쇼 끝 부분에 가서 나도 모르게 게스트로 내가 늘 존경하던 메리 타일러 모어를 내보냈다. 난 늘 그녀처럼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그녀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콧물 눈물을 흘렸었다.

*올해로 프리덤 마치의 50주년이 되고 BBC가 이에 대해 기록영화를 만들면서 당신과 인터뷰를 한 줄로 아는데 무슨 말을 했는가.

- 그 행진이야 말로 우리나라에 값진 것이며 또 처음으로 흑인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를 바꿔 놓은 것이다. 우리의 권리와 우리가 그것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을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행진을 계기로 우리는 그 것이 가능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난 그 때 너무 어려 행진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터뷰에서 내가 그 때 어디에 있었고 또 어떤 아이였는지를 말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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