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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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잠깐…“ 왜 우린 이렇게 싸울까”

2013-05-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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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 정 이전’(Before Midnight) ★★★½(5개 만점)

▶ 40대가 된 부부의 가슴 속 깊은 얘기 유머와 우수 간직

로맨스는 잠깐…“ 왜 우린 이렇게 싸울까”

셀린(쥘리 델피)과 제시(이산 호크)가 그리스 시골을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부부란 다 그런 것이다. 둘이 함께 한참을 살다보면 처음에 둘을맺어준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것이퇴색하고 현실이 기승을 떨면서 둘을 거의 적처럼 만들어 싸움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과거가 그립지만그것은 이미 지나가 더 약이 오르는데 그래서 싸우다 보면 할 말 못할 말 다해 상대의 가슴을 아프게한다. 그러나 이런 싸움은 때로 정체된 부부관계를 재충전시켜 주는에너자이저 구실을 해 가끔은 필요할 때도 있다.

9년을 함께 산 제시(이산 호크)와 셀린(쥘리 델피)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서로를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는 둘이 싸우는 데는 별 특별한 이유도 없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고 사실적이다. 미국 청년 제시와 프랑스 처녀 셀린은 지난 1994년 둘 다 20대 때 ‘동트기 이전’(Before Sunrise)에서 유럽을 달리는 열차 안에서 처음으로 만나 제시의 권유로 무작정 비엔나에서내려 하룻밤 내내 거리를 걸으며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진다.


둘이 재회를 한 것은 지난 2004년 파리. 작가로 결혼한 제시가 셀린과의 만남을 내용으로 쓴 책의파리 출판기념회에 셀린이 제시를 찾아온다. 30대가 된 둘은 ‘황혼 이전’ (Before Sunset) 까지 파리시내를 걸으면서 얘기를 나눈다.

기막히게 로맨틱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제시가 파리에 남을 것 같은 인상을 받았는데 이제‘자정 이전’에서 40대가 된 둘이 9년을 함께 산 사실혼 관계의 부부가 되어 다시 우리와 만난다.

이 영화는 제시와 셀린의 걸으며 얘기하는 ‘로맨스 3부작’의 마지막 편이라고 하겠는데 꼭 9년 뒤쯤 둘이 50대가 되어 다시 우리앞에 나설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말의 영화인데 각본이 참으로 아름답고 깊이 있고 통찰력과 예지와 유머와 우수를 지녔다. 대사가진실하고 사실적이며 또 솔직하고내심하다. 바로 우리의 얘기다.

각본은 3편을 모두 감독한 리처드 링크레이터와 호크와 델피가함께 썼는데 영화 속의 인물들과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호크와 델피의 개인 경험들이 포함됐다. 삶의 잡다한 사정과 인간의 가슴 속을 환히 들여다보는 경탄할 만한글이다.

여름 동안 자기와 함께 그리스에서 6주를 보낸 뒤 시카고로 돌아가는 중학생 아들을 제시가 공항에서 전송하는 가슴 싸한 이별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 제시는 밖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셀린과 함께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간다. 뒷좌석에는 둘의 어린 딸 쌍둥이가 자고 있다. 제시와 셀린은 그리스 남부의 메시나의 시골에 살고 있는 작가 패트릭의 초청으로여름을 이곳에서 보내고 내일이면파리로 돌아간다.

제시와 셀린의 차내 대화가 15분 정도 진행된다. 약간 신경이 과민하고 생기발랄한 셀린과 민감하면서도 ‘세상사 다 그런 거지’라는태도를 지닌 제시의 대화가 리드미컬하게 이어진다. 제시는 미국에돌아가 살고 싶다는 뜻을 표하나이미 뉴욕에서 2년을 함께 산 셀린은 이에 반대한다. 환경보호 활동가인 셀린의 직업과 장래와 야망과 좌절 그리고 아이 양육과 그리스의 유적 및 “아직도 날 사랑하느냐”는 오랜 관계를 유지한 사람들 간의 물음들이 오고간다.


두 번째의 긴 대사는 패트릭이마련한 이별 만찬 테이블에서 이어진다. 자리에는 젊은 연인 한 쌍과중년부부 한 쌍이 동석했는데 문학과 사랑과 컴퓨터 섹스와 페미니즘 그리고 자기완성과 변화 및상대방 간직하기 등이 얘기된다.

제시와 셀린의 대화에서 둘의 오랜 관계에 긴장감이 형성됐음을 느낄 수 있다.

이어 제시와 셀린은 그리스 친구들이 작별선물로 마련해준 해변호텔에서 그리스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시골길을 걸으며다시 얘기를 나눈다. 둘이 서로 공격하고 반격하고 놀리고 어르고달래고 또 구애하는 모습이 막 연애하는 한 쌍 같기도 하고 예쁜 괴물들 같기도 하다.

클라이맥스는 호텔방에서 둘 간에 치열하게 오고가는 30분 간의설전. 처음에는 성적인 분위기를갖추던 둘의 관계가 현실문제가 얘기되면서 논쟁으로 변하고 이윽고회한과 비난과 노기와 증오마저 있는 전쟁으로 변한다.

오랜 관계의 기쁨과 좌절 그리고 문제를 가차 없이 솔직하면서도 자비로운 심정으로 들여다본훈풍의 감촉이 느껴지는 절묘하고유려한 커플에 관한 소묘로 호크와 델피의 연기가 훌륭하다. 특히살이 통통하니 찐 델피가 젖가슴을 드러낸 채 용감한 연기를 한다. 촬영도 곱다.

R. Sony Classics. 아크라이트(323-464-4226), 랜드마크(310-470-0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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