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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를 사이에 둔 모녀 `숨막히는 긴장감’

2013-03-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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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커 (Stoker) ★★★½(5개 만점)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모녀 `숨막히는 긴장감’

찰스(왼쪽)가 스토커의 식구로 들어오면서 모녀간인 이블린(니콜 키드만·가운데)과 인디아(미아 와시코브스카)간에 성적 긴장감이 조성된다.

아름답고 분위기 있는
박찬욱 감독의 스릴러

변태적으로 아름답고 병적으로 매력적인 어둡고 뒤틀린 심리 스릴러이자 가족 멜로드라마이다. 한국인 감독으로 올 들어 김지운(그의‘ 라스트 스탠트’는 흥행서 참패했지만 이는 김 감독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늙은 아놀드 슈워제네거 탓이라고 해야 옳겠다)에 이어 두 번째로 할리웃에 등단하는 박찬욱의 작품.

세밀한 부분까지 공을 들인 시각 스타일리스트인 박 감독의 노고가 역력한데 이야기 위주라기보다는 분위기와 화면 구도와 세트와 소품 및 의상 등 외형적인 것에 더 신경을 쓴 작품이다. 박 감독의 이런 의도는 그의 단골 촬영감독 정정훈의 환상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촬영에 의해 완벽하게 영상화 한다. 박 감독은 구두를 비롯한 여러 가지 소품들을 마치 물신 숭배자처럼 쓰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부분 부분, 장면 장면은 뛰어나게 아름답고 기하학자의 청사진처럼 빈틈이 없으나 전체적으로 서술이 약해 가슴으로보다는 눈으로 더 즐거운 영화다. 장면 장면이 마치 피를 뿌린 그림엽서 같은 영화로 나무를 강조하다가 숲을 못 보고 있다.

박 감독의 재치가 번득이는 작품으로 컬트영화 기질을 갖췄는데 성적 긴장감이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재는 주인공들의 연기와 모습이 어찌나 찬지 마치 좀비들같다. 그래서 화사한 컬러촬영에도 불구하고 사색이 된 차가운 죽음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박 감독은 폭력과 악의 탐구자요 미학자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인데 이번엔 폭력과 악의 유전성(또는 전염성)을 제시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영화는 ‘배드 시드’를 연상케 하는데 이밖에도 박 감독은 히치콕을 찬양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그의 영화에서 여러 가지를 빌려다 썼다.

우선 주인공 이름까지 서로 내용이 비슷한 ‘의심의 그림자’ (Shadow of a Doubt)의 찰리를 차용했고 이 밖에도‘ 사이코’를 비롯해 뱅뱅 도는 카메라까지 히치콕 영화를 닮은 데가 많다.

영화는 모범 여고생이나 내성적이요 어딘가 병적인 인디아 스토커(미아 와시코브스카)의 18세 생일에 자기를 극진히 사랑하는 아버지 리처드(더맛 멀로니)가 교통사고로 숨지면서 시작된다. 장례식에 참석한 인디아와 그의 어머니 이블린(니콜 키드만)의 관계가 냉랭한데 둘은 시종일관 모녀라기보다 라이벌처럼 대립한다.

장례식 후 이블린의 집에 인디아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삼촌 찰스(매튜 굿)가 나타난다. 그 동안 세계를 떠돌아다녔다는 찰스는 늘씬한 미남 멋쟁이로 약간 타락한 매력을 지녔는데 그가 이블린의 집에 식구로 들어오면서 한 남자를 놓고 모녀간에 숨이 막힐 것 같은 감정의 대결이 일어난다.

이들의 이런 감정을 마치 태엽인형을 틀듯 조정하는 것이 찰스로 인디아는 삼촌이 어딘가 수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는 반면 이블린은 찰스의 성적 유인에 마치 마법사의 마법에 걸린 듯 맥을 못 춘다.


그리고 이 집에서 오래 일하던 하녀가 실종되고 곧 이어 이 집을 방문한 인디아의 고모 그웬돌린(재키 위버)도 변을 당한다. 그런데 인디아는 처음에 찰스의 은근한 매력과 유혹(둘이 함께 치는 피아노곡은 영화를 위해 필립 글래스가 작곡했는데 이 장면이 자극적이다)에 저항하나 결국 서서히 이블린처럼 이 수수께끼의 남자에게 이끌린다. 일종의 소녀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박 감독의 영화이니 만큼 피가 없을 수가 없는데 마지막의 폭력과 흩뿌려지는 유혈이 새디스틱하게 아름답다. 따뜻하고 밝은 햇볕 뒤에 숨은 먹구름의 위험하고 위협적인 분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작품으로 시간대는 분명히 현재인데도 마치 다른 시간대와 치원의 얘기를 보는 것 같다. 독성 있는 동화와도 같은 작품으로 연기들이 모두 뛰어나다.

특히 냉동인간의 표정을 한 와시코브스카의 계산적인 무감하고 도전적인 연기가 일품이고 굿의 사악성을 감춰주는 핸섬한 외모의 부잣집 플레이보이와도 같은 오만하면서도 아첨하는 연기 및 허약한 것 같지만 만만치 않은 얼음처럼 차가운 키드만의 연기도 훌륭하다. 이와 함께 프로덕션 디자인과 음악도 좋은데 영화에는 리 헤이즐우드와 낸시 시나트라가 부르는‘ 서머 와인’이 계속해 나와 분위기를 얄궂게 조성한다.

R. Fox Searchlight. 아크라이트(선셋과 바인),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박흥진의 영화 이야기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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