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지는 반신불수가 된 아내 안을 정성껏 혼자 돌본다.
노부부 간의 헌신적인 사랑과 오랜 고통 그리고 궁극적 죽음을 가슴 아프도록아름답고 부드럽게 그린 작품으로 매우 가깝고 통절하며 또 연민의 정이 가득고 숭고한 오스트리아 영화다.
놀라운 것은 감독이 도발 받지 않은 갑작스럽고 잔인한 폭력을 잘 다루는 오스트리아의 미하엘 하네케(‘퍼니 게임’ )란 점. 그가 이번에는 사랑과 죽음을 맞은 인간의 존엄성과 감수성을 엄격하면서도 민감하게 다루었는데 그 표현력이 감지하기 힘들 정도로 그윽하고 심오하다.
가슴을 찢을 듯이 슬프고 충격적인 영화지만 사랑하는 병든 아내를 돌보며 저 세상으로 보내야 하는 남편과 그의 깊은 사랑과 헌신을 몸과 마음 전체로 흡수하는 아내와의 관계의 모습이 거의 저 세상 것처럼 거룩하고 고와 보고나서도오랫동안 잊지를 못하겠다. 지극한 사랑의 힘에 경탄의 한숨이 나온다.
영화는 완전히 2인극이나 마찬가지로 얘기는 처음 부분의 장면만 빼고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진행된다. 처음에 경찰이 한 아파트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 머리에 화관을 쓴 채 침대에 누운 한 늙은 여인의 사체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은퇴한 노 음악교수 조르지(장-루이 트랭티냥-‘남과 여’ )와 역시 음악가인 아내 안(에마뉘엘 리바-‘히로시마 내 사랑’ )은 책과 음악과 둘 간의 사랑에 둘러싸여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안이 가벼운 뇌졸중을 일으켜 잠깐 기억을 상실하면서 조르지를 깜짝놀라게 만든다.
안은 이 후 오른쪽 몸을 못 쓰고 휠체어에 의존한다. 이런 안을 조르지는 극진히 돌본다.
안이 두 번째로 뇌졸중을 일으키면서 그녀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악화하는데 조르지는 양로 병원에 안 가겠다는 안의 뜻을 존중해 스스로 안을 돌본다. 화장실 가는 것과 먹는 것 그리고 침대에 드는 것을 모두 혼자서 아무 불평 없이 돕는다.
조르지가 몸을 못 쓰는 안을 안타깝고 사랑으로 가득한 눈으로 보는 모습과 이를 망연자실하는 듯한 눈으로 받아들이는 안의 모습에서 수십 년을 함께 산 두 사람 간의 사랑과 존경과 공존의 고마움의 념이 스며 나온다.
안의 상태가 하루가 다르도록 악화하면서 조르지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큰 시련을 당하지만 조르지는 이런 시련을 오히려 둘 간의 사랑의 재확인의 기회로 여기고 말없이 안을 돌본다.
영화에서 역시 음악가인 조르지의 딸 에바(이자벨 위페르)가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오래간만에 부모의 아파트를 찾아오는데 아버지와 딸의 대면이 어색할 정도로 사무적인 것이 매우 사실적이다. 이 대면을 통해 조르지의 안에 대한 사랑의 깊이와 폭이 더욱 뚜렷이 부각된다.
갑작스럽게 마치 거의 공포영화처럼 끝이 나는데 조르지가 아파트 안으로 날아 들어온 비둘기를 담요로 잡으려고 하는 모습이 한 폭의 평화롭고 우스운 쉼표 스케치 같다. 트랭티냥과 리바의 모든 것을 벗어버린 검소하면서도 그윽한 응시의 연기가 감동적이다.
성인용. Sony Classics. 로열 (310)478-3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