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의 향기] 임문자 ㅣ 유권자의 고민

2011-11-27 (일)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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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 되면 입후보자들 만 바빠지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들의 눈과 귀도 어쩔 수 없이 바빠진다. 싫던 좋던 그냥 들려온다. TV와 신문에서 나오는 일이니 유권자들에게는 중요한 정보가 되기도 한다. 그 정보라는 것이 앞으로 있을 정책보다는 상대방 비방에 대한 것이 많다. 오래전에 있었던 비밀이 들추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마치 누가 더 나쁜가 경쟁이라도 하는 것을 보는 듯 하다. 자기가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어떤 정책이 어떤 성향의 유권자에게 유리한가 계산 하는 것은 입후보자의 몫이다.

여러 통로를 통해서, 혹은 경쟁자인 상대편에 의해서, 입후보자가 과거에 저질렀다는 여러가지의 비리라는 것과 잘못된 점이 들어난다. 투표를 할 때 쯤 되면 유권자 쪽에서 볼 때에는 이미 어느편이든 상관없이 흥미가 없어져버린 입후보자들 중에서 덜 싫은 사람을 뽑아야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투표는 개인의 권리이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했다고 해서 누가 트집을 잡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기권표가 늘어나는 것인지는 몰라도, 더욱 싫어하는 사람이 당선될까 두려워서 덜 싫어하는 사람을 투표하기도 한다. 그렇게 흠이 많다는 사람들에게 한표를 던져야 하는 유권자의 신세가 가련하다.

그런가 하면, 누가 정치를 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늘어나서 투표율이 저조하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당선시키기 위해서 온갖 수단이 모두 동원되는 양상은 인간의 양심과 지겨야 할 도리를 넘어서는 것이 있어 문제가 된다. 사람들의 이성이 마비되고 흥분되어서 그러한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 대중의 쏠림이다. 상식에 벗어난 집단행동이 거침없이 일어나고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그렇게 많은 것은 어찌 된 일인가? 아니면, 대중을 혼동시키는 것이 정치의 기술인가?


돌이켜보면,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비슷한 일들이 생각난다. 히틀러의 인기도, 홍위병의 물결도, 정치가 대중을 오도하고 선동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민중은 단순하고, 어느 집단의 숫자가 많아지면 이성에 의하기 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린다. 공산당은 그 분위기를 적절하게 이용하고 통제하면서 정권을 장악하기도 했다.

우리는 투표권이라는 권리같지도 않은 권리를 부여받았다. 왜냐하면, 투표를 할지 말지, 누구에게 귀중한 한표를 던질 것인지 결정하는 권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과연 나를 위한 권리인지는 내가 던진 한표의 입후보자가 얼마나 나에게 유익한 정책을 펼치는지 그 결과가 나타낼 때에만 유효한 권리이다.

입후보자가 하는 행동을 보면, 그가 과연 국가를 위해서 공복을 하겠다는 것인지, 다만 자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국가에 손해가 나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것인지 헤깔리기도 한다.

그리스처럼 재정이 흔들리는 나라, 북한처럼 굶주리는 나라, 독재에 항거하는 나라, 한국처럼 IMF에서 빠져나오는 나라, 일당 독재에 국민이 억눌려서 사는 나라, 멕시코처럼 갱들이 설쳐대는 나라, 그리고 미국처럼 월가를 점령하겠다는 무리들이 생겨나는 나라…. 그나마 남아있는 시의 재정은 확산되는 점령대들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사용된다. 그리고 시의 예산 때문에 경찰력을 축소하는 일도 생겨난다. 왠일인지 천재지변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주정부의 고갈되는 예산을 축내는 일에도 일조하고 있다.

살기좋은 나라와 행복한 국민. 그렇게 만들겠노라는 입후보자가 TV화면에 단체로 나와서 열을 올린다. 나는 그들을 멍하게 바라본다. 어쩐지 막막하고 한심스럽다.

가장 안정되고 모범적인 나라, 미국에도 검은구름이 드리워지는가? 지평선 너머에 구름이 어리듯이 혼돈의 날개가 드리우는 이 시대를 이끌고 나갈 사람은 누구인가?

나의 한표, 나의 권리가 고민에 빠져든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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