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딸의 웃음 소리가 윗층에서 들려온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던 중 그 소리에 기분이 좋아진다.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이런 저런 장난을 치고 마치 데이트 하는 연인인 양 깨가 쏟아진다.
딸아이가 벌써 7학년이 됐지만 그 둘에게 손잡고 다니는 일, 일어나서 서로 허그하는 일이 무척 자연스럽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우리 아빠가 생각난다.
나 어릴 적 대부분의 아빠들은 자상하기 보단 엄하셨고 가장의 권위를 무척 중요시했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참 많이 다르셨다. 퇴근하고 돌아오시면 집안의 유일한 딸이였던 나를 꼭 껴안아 주셨던 기억이 많이 난다. 가끔씩 약주를 드시고 오신 날은 더 많이 안아 주셨다.
그런데 사실 그땐 그게 참 싫었다. 아빠 입에서 나던 술냄새가 싫었고 너무나 꼭 껴안아 숨쉬기 힘들었던 기억이 참 싫었다. 그리고 난 지금 우리 딸만큼 본인의 아빠에게 곰살맞게 굴던 딸이 아니였다.
사춘기란 걸 겪으면서 난 더 더욱 아빠와 멀어져 갔다. 밖에선 그렇게 말이 많았지만 집에만 오면 할 말이 없었다. 내 시큰둥한 대답에 아빠의 질문도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나이 들어갔고 아빠는 늙어가셨다.
아빠는 이제 많이 늙으셨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가던 나를 붙잡고 잔소리를 하던 엄마를 향해 "이쁘기만 한데 왜그러냐고." 내 편을 들어주셨던 아빠는 지금 너무 늙으셨다.
첫사랑에 실패한 나를 위해 가장 서럽게 위로해 줬던 아빠는 이제 정말 너무나 많이 늙으셨다.
이제라도 아빠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싶은 데 우리 아빠는 이제 내가 하는 말을 잘 못 알아 들으신다. 아니 못알아 들으시는 게 아니라 그저 잘 표현하지 못하실 뿐이다. 전화기 저편으로 들려오는 아빠는 이제 딱 두 마디만 하신다.
"전화 줘서 고맙다.’ "사랑해, 내 딸."
"고맙긴 뭐가 고마워. 딸이 아빠에게 전화하는 건 당연하지.왜 자꾸 고맙다고 해. 그런 소리하지마."
"나도 사랑해, 아빠."
아빠가 별 대답이 없다. 내 말을 들으셨을까? 그래 들으셨을거야. 아빠는 딸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거야.
바보 같은 딸은 아빠가 그렇게 말하셨는 데도 듣지 않고 있었지만.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