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필산책] 주 평 ㅣ세현이와 나의 고추잠자리

2011-11-09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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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에 발표한, 이 수필산책 란(欄)에 실렸던 ‘하늘나라로 먼저 간 큰놈’ 이란 나의 글을 읽고, 여러 독자들이 자식을 먼저 보낸 나를 위로 하는 말과 함께, 글 서두(序頭)에 고추잠자리를 도입(導入)한 시도가 좋았었다는 공명(共鳴)을 덧붙여 주기도 했다. 한편, 고령(高齡)이신 H 박사께서 전화로 “그 글 속에 아버지와 자식 간의 애정이 짙게 깔려 있었다” 라는 말을 해 주었을 때, 그날 하관예배 때, “이 애비를 사랑했던 세현아, 부디 잘 가거라!” 라고 울부짖었던 나의 통곡이 다시 한 번 메아리 되어 울려 왔다. 그리고 내가 본 그 날의 고추잠자리를 글 첫머리에 색다르게 도입한 나의 시도가, 빗나가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세현이가 간지도 벌써 석 달! 세월은 모든 걸 잊게 하는 약(藥)이자, 세월의 강물은 모든 걸 안고 흘러간다지만, 오늘도 제 에미는 식탁에 멍하게 앉아, 세현이가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입버릇처럼, “아버지와 엄마랑 고등학교 때처럼, 단 몇 년 만이라도 함께 살아 봤으면…” 했던 큰놈의 소원을 되뇌며, 내프킨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음은 세월의 강물도 모든 아픔을 쓸어안고 흘러가지는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한편 세현이의 세월과는 달리 이 애비의 세월은 많은 것을 안고 흘러가 주었다. 내가 베리 메디칼 재활치료실에서 집으로 돌아 온지 열흘만에 치루어 진 세현이의 장례식 때, 내 목에 투박하고 볼장 사나운 Liner(목 보호태)를 감고, 휠체어에 앉아 조문객들을 맞이했을 때 그들로부터 2중의 애도(哀掉)의 말을 받았던 그 참담한 모습과는 달리,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오늘, 내가 탔던 휠체어는 접어져 벽 쪽으로 치워지고, Walker(걸음걸이 보조기) 마저 소용없게 되었고, 이제는 지팡이 하나로 바깥출입까지 가능할 뿐 아니라, 참새걸음 같이 가볍지는 못 하지만, 지팡이의 도움 없이도 돌 지난 아이의 짜박 걸음 마냥, 아장아장 걸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손의 마비가 풀리지 않아 9월 달의 ‘하늘나라로 먼저 간 큰놈’에서는 내가 구술(口述,입으로 말함)하는 내용을 후배인 N군이 받아 컴퓨터에 입력했지만, 지난 10월의 ‘병상일기’ 부터는 내 손으로 원고지 칸을 매울 수 있게 된 사실은, 내 나름의 재활을 위한 노력과, 세월의 흐름이란 약이 내 손등에 발라 주고 간 효력인가 싶다.


그런데 9월의 고추잠자리를 도입부로 한 내 글을 읽고, 깜짝 놀란, 둘째 놈 동현이가 이 애비에게 전한 말이, “형이 수년 전 연문으로 쓴, 어릴 적에 고추잠자리 잡던 회상(回想)의 글이 아직도 그의 컴퓨터에 그대로 담겨 있다” 는 말이었다. 둘째 놈의 말을 듣고 내 머리에 직감적(直感的)으로 스친 생각은, 생명공학(生命工學) 분야에 몸담은 그였지만, 작가인 이 애비와의 Telepasy(交感)가 서로의 혈관 속에서 흐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여기에 형이 남기고 간 글을 동현이가 번역하고, 이 애비가 약간 손질한 글 고추잠자리를 요약해서 옮겨본다.

고추잠자리/잠자리 잠자리 고추잠자리/구슬 같은 두 눈의 고추잠자리/날라라 날라라 들판 저 멀리/잠자리 잠자리 고추잠자리/빨간 꼬리 길다란 고추잠자리/날라라 날라라 하늘 저 멀리/잠자리 잠자리 고추잠자리/꼬리에다 파란 풀잎 달아 줄테니/내년 가을 이맘 때 다시 오너라/. 나는 이렇게 고추잠자리 노래를 부르며 시골에서 올라오신 외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잠자리채를 어깨에 메고, 할머니와 함께 내가 살던 수유리 집 뒷산으로 고추잠자리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 때가 내가 서울 우이초등학교 3학년쯤의 일로 기억 됩니다. 그날, 서쪽 산마루에 붉은 노을이 뉘엿뉘엿 깔릴 무렵, 할머니와 나는 잡은 고추잠자리 두 마리를 헌 모기장으로 만든 잠자리 초롱에 넣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날 밤 나는 할머니 방에서 같이 잤습니다. 할머니는 나에게 들려 주셨습니다. 잠자리 채 말고도 잠자리를 잡는 방법은, 사뿐사뿐 잠자리 쪽으로 걸어가서 동그랗게 원(圓)을 그려서 잠자리의 혼을 빼 놓고 잡는 방법을 말입니다. 그리고 잠자리가 연못이나 물이 고인 듬붕 위를 나르면서 꼬리로 물을 서치는 까닭은, 물에다 알을 낳기 위해서란 사실도 말입니다.

가을이 깊어 갈 무렵, 외할머니는 시골로 다시 내려 가셨습니다. 할머니께서 떠나가신 뒤, 나는 고추잠자리를 잡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시골로 떠나가시던 날, 할머니는 우리 집 앞뜰 꽃밭 언저리 담가에 서 있는 키다리 해바라기가 쓰러질까봐, 잠자리채로 고여 놓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해바라기 꽃에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외롭게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외로운 고추잠자리를 잡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을 때, 그 고추잠자리는 멀리 또 멀리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세현이가 살아생전 쓴 단 한편의 글이자 또 그의 마지막 글인 고추잠자리를 읽으면서 그가 바라보았던 해바라기 꽃에 앉았던 그 외로운 고추잠자리가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그의 하관예배 때, 날아와 세현이와 함께 하늘나라로 날라 간, 바로 그 고추잠자리가 아니었던가 하는 이 애비의 작가적인 상상을 덧붙여 보는 것이다. 어쨌든 큰놈 세현이가 살아생전 추억으로 간직했던 고추잠자리와 나의 동극작품 속에서 수 없이 날고 있는 이 애비의 고추잠자리는, 나의 머릿속 상념(想念)의 창공(蒼空)에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날고 있을 것이다.

(아동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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