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유영경 ㅣ 친구를 생각하며

2011-11-02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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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어디다 두었을 텐데 한참을 뒤져도 찾지를 못한다. 급히 알아야 할 연락처가 있어 책상 서랍을 서너 차례 열고 닫기를 하고 나서야 오래된 수첩 하나를 손에 쥐었다. 그 수첩 속에 적혀진 이름만 보아도 그리움이 마음 가득 퍼진다. 오래 전 한국을 떠나오면서 정리해 두었던 지인들의 연락처이다. 우연히 그 수첩에 함께 꽂혀있는 봉투 하나를 발견하고 열어보니, 친구에게서 작별인사를 하며 받은 편지였다. 손 글씨로 단정하게 적혀진 글을 읽는 동안, 분주했던 나의 일상에서 잠시 떠날 수 있었다. 글 아래 부분에 유안진 선생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도 옮겨 써져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를 생각하며 누구나 한번쯤은 중얼거려 보았을 글이다.

지란지교, 명심보감에 나오는 지초와 난초의 사귐에 대한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공자는 ‘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향기를 맡지 못하니, 그 향기에 동화되기 때문이다. 선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절인 생선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악취를 맡지 못하니, 또한 그 냄새에 동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하니 군자는 반드시 함께 있는 자를 삼가야 한다.’고 하였다. 글을 읽으며 사람을 조심히 골라 사귀어야지 했던 어릴 적, 생각조차 어렸던 내 모습도 기억이 난다. 오래 전 나에게 편지를 전해준 친구에게 묻고 싶어진다. 나는 너에게 어떤 친구였는지.

세월이 흘러 마흔 중턱에 선 내가 이 글을 대하며, 나의 모습을 본다. 나는 친구에게 지초와 같은 사람일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유안진 선생님의 글 속에서처럼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한 인품의 사람은 못 되어도, 휴식이 필요한 친구 곁에 말없이 앉아있어 주는 일쯤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복잡한 문제 속에 지친 친구에게 문제의 답을 주지는 못 하겠지만, 따뜻한 차 한 잔과 조용한 음악을 함께 나눌 수는 있지 않을까?


나도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기운을 전해주는 향 좋은 난초 같은 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IIC한국어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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