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윤효순 ㅣ 바람이 잔 후의 산책
2011-10-18 (화) 12:00:00
바람이 잠잠해진 아침이다.
괴로운 알레지철이다. 바람은 근교 농장의 먼지와 공기속의 불순물을 몰고 와서는 눈과 코와 목을 강타하여 괴로운 삼일을 보냈었다. 문을 꽁꽁 닫고 생활하며 바람이 그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바람소리가 잠잠해 졌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나갔다. 어느새 해님까지 올라와 있었다. 며칠 하지 못했던 운동을 하기위하여 동네 산책을 나갔다.
키 큰 나무들의 피해는 생각보다 심했다. 공원에 있는 참나무는 가지 두개가 찢어져 하나는 차도 쪽, 하나는 인도 쪽을 가로 막고 있었다. 언제나 소녀들의 단발머리처럼 단정하던 버드나무의 가지도 꺾이고 헝클어져 있었다. 여기 저기 엉망으로 흐트러진 나뭇가지들을 피해 인도를 따라 걸었다.
약속을 어김 당한 표현을 바람 맞았다고 했는데 태풍 후 나무모습을 거기다가 비했을까? 어쩌면 바람맞은 사람의 마음상태가 찢어진 나무줄기 같지는 않을까? 무성했던 가지가 있었던 자리의 허전함은 기다리던 사람이 영영 나오지 않을 때의 삭막함과도 같을 것이다.
엉뚱한 생각을 하며 걷다가 저만큼 마주 오는 남자분의 행동에 시선이 머물렀다. 자그마한 체격에 오십은 넘은 듯 한 깨끗한 인상을 주는 백인 아저씨였다. 산책 나온 차림인데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인도를 막고 있는 나무줄기들을 이리 저리 치우며 길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까이 가자 더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길 걷는 나를 위해 작고 큰 가지들을 치우고 있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밝은 얼굴로 마주 인사를 했다.
이름 없이 다른 이를 위하여 길을 만들고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세상이라면 바람 맞은 흔적이 곧 사라지고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누구라도 위로 받고 살만한 세상이 이루어지리라. 며칠 동안 불었던 바람으로 인하여 심란해진 마음이 금세 편안해 졌다.
생각이 짧고 이기적인 나에게 다시 한 번 귀중한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그분을 닮고 싶어서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돌아가 꺾어져 뒹굴며 인도를 막고 있는 나무 가지를 치우고 있었다. 마음속에 가득 뿌듯함을 채우고서.
(자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