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라! 저 봐라. 간결한 듯 하면서도 우아한 저 자태, 검소한 듯 하면서도 화려한 사선, 단순하게 내렸지만 충신의 절개가 풍겨져 나오는 직선, 높은 곳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한글의 모습이 모든 글들을 시종으로 거느린 왕의 품위가 배어나오고 있지 않느냐!
오래전 아이하고 파리를 다녀왔다. 여정 중 눈앞에 나타난 풍경에 감탄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쏟아져 나왔던 나의 말 이다.
어둠이 스멀스멀 퍼지는 몽마르뜨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중요한 곳으로 안내 한다고 손을 끌며 달리는 아이를 따라 다다른 곳은 어떤 건물의 옆면이었다. 높이가 이층은 될 성싶었고 넓이가 40평방미터라 했던가. 매끄러운 느낌이 나는 진한 파란색 벽 위에 낙서처럼 아이들 장난처럼, 기호처럼 질서 없는 하얀 글씨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300여 나라의 글로 ‘사랑해.’가 써진 Mur De Jet’aime 벽이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말과 행위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말 ‘사랑해’를 그렇게 그려 논 것이였다.
그 중에서도 한 눈에 쏙 들어오는 우리글은 맨 위쪽 중앙으로 ‘사랑합니다.’가 질서 정연하게 써져있었고 역시 중앙으로 내 키의 얼굴쯤에 ‘사랑해.’가 귀엽고 수줍게 써져있었다. 세계의 글씨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우리글, 속삭이는 햇살처럼 ‘사랑해. 사랑합니다.’ 밀려오는 어둠 속에서 따스하고 다정한 어머니의 눈길처럼 가슴에 스며들고 있었다.
어디 아름답기만 한가. 배우기 쉽고, 쓰기 쉽고, 어떤 소리든 말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기록할 수 있고, 음표에 맞추어 노래하기까지 쉬운 문자가 한글만한 글이 또 있다던가! 거기에 있는 모든 글자가 한글의 ‘사랑합니다. 사랑해’를 장식하기 위해 있는 듯하다고 들떠서 외치는 어미의 말에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내 아이까지 긍정을 했다.
눈병의 고통도 참아 가시며 어린 백성을 살펴 뜻을 펴게 해 주셨던 세종대왕의 사랑의 마음이 그 곳 까지 전해짐을 느꼈다. 당당하고도 기품 있게 자태를 뽐내고 있는 한글로 인하여 예술의 도시, 도도한 파리 하늘 밑에서 나그네인 나는 벅찬 가슴을 다독이고 있었다.
(자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