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민진 ㅣ 원인모름

2011-10-0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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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가벼운 복통에 지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시험 보러 가는 길 내내 윗배가 쿡쿡 쑤시긴 했지만 스트레스 때문이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시험을 보는 동안 배는 점점 심하게 아파오기 시작했고, 한 시간쯤 지났을 때는 더 이상 시험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배가 뒤틀렸다. 서둘러 아무렇게나 답을 쓰고 시험지를 내고 나왔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거대한 바늘이 배를 찌르는 기분이 들어 낑낑거리며 겨우 집에 도착했다. 문을 닫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누웠고 조금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에 잠을 청했다. 평소 자주 배가 아프기 때문에 이번에도 곧 나아질 거라며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욱신욱신 거리는 배 때문에 도저히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아픈 배를 부여잡고 학교 병원에 갔고, 의사가 내 현재 증상과 평소 건강상태를 물어보았다. 내 대답을 들은 의사는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병실 침대에 잠시 누워있으라고 했다.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서 자주 아팠었지만 이런 종류의 복통은 처음이었다. 간호사가 와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를 포함한 갖가지 검사들을 실시했고 내 팔에 링거를 꽂았다. 병원에 온지 3시간이 다 되어서 의사가 한 말은 “맹장염이 의심되니 큰 병원에 가야한다”였다.

15분여 뒤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난생처음으로 앰뷸런스를 타고 큰 병원에 실려갔다. 그 곳에서도 응급실에 들어갔는데 말이 응급실이지 간호사 호출버튼을 누르면 적어도 10-20분이 지나서야 간호사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들어왔고, 학교 병원에서 실시했던 모든 검사들을 다시 다 새로 했다. 이젠 배가 아픈 것보다는 하루 종일 검사에 시달린 탓에 심신이 지쳐서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밤 11시가 되어서 드디어 간호사가 들어와 검사결과들을 보여주었다. 내 복통의 원인은 “모름” 이었다. 하루 종일 검사만 수십 번을 했고 링거만 5개를 맞았는데 원인 모름이라니...맹장염이 아니라 다행이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허탈했다. 결국 약 한 알도 못 받은 채 깜깜한 밤에 병원을 나왔다. 여전히 배는 쿡쿡 쑤셨지만 링거를 많이 맞아서 그런지(?) 고통은 조금 줄어들어 있었다. 결과도 결과지만 미국의 불친절한 병원 서비스와 병원들간의 비효율적인 네트워크 시스템에 매우 실망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복통이라도 많이 가라앉아 있으면 좋겠다.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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