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조 옥규 l 까마귀 우는 황혼녘

2011-10-03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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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공원에는 가을바람이 먼저 와 있었다. 바람을 타고 한 무리 까마귀들이 하늘을 낮게 날아오더니 유칼립투스나뭇가지에 앉아 소란스럽게 울어댔다.
한국에서는 까치가 짖으면 기쁜 소식이 온다하여 반가워했고 까마귀가 울면 불길한 징조라고 기피하였다. 한낮동안 어디를 헤매다 돌아오는지 또 다른 한 떼의 까마귀들이 푸른 잔디밭에 내려앉아 합창을 했다.

함께 걷던 친구가 길에 떨어진 페니를 주워 운동화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니 아브라함 링컨초상이 보이게 떨어진 페니를 주워 신에 넣고 다니면 행운이 온다고 했다. 누가 그런 말을 퍼트렸는지 몰라도 미신처럼 근거 없는 속설일 것 이다.

어쩌다 인권대통령으로 추앙받는 링컨이 하필이면 발 냄새나는 신발 속에서 행운의 부적(Lucky Charm)이 되었을까. 그래도 친구에게 행운이 함께하기 바라는 심정으로 “굿 럭”하고 말해 주었다.


까마귀와 까치는 통틀어 까막까치라고 불리는 이웃사촌이다.

그럼에도 첨단과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들에게 상반된 의미를 부여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인간위주의 편집이나 편견으로 만사를 가늠해보려는 의도적인 평가이거나 심심풀이로 해보는 심미적 취향이 아닐까싶다.

오래전에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를 방문했었다. 안내원이 도심 곳곳에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까마귀를 가리키며 오늘은 손님들에게 좋은 일이 생길 전조라고 했다.

한국에서 천대받는 까마귀가 남양의 섬나라에서는 상서로운 길조로 대접을 받고 있어 놀랐었다. 같은 까마귀를 놓고도 상징적 의미가 다르다니, 인종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사물에 대한 인식의 각(角)까지도 다를 수 있구나싶었다.

행복과 불행의 척도도 마찬가지다. 히말라야 산간도시에 사는 어느 거지여인이 이승의 가난이 곧 저승의 행복이라고 굳게 믿으며 화려하게 치장한 외국 대사부인을 보고 참으로 불쌍타고 동정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세상사는 마음먹기 나름인 것 같다. 부정적인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자연이 어디 있으랴.

황혼의 잔영이 남아 있는 하늘로 까마귀 한 떼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며 “까-욱 까-욱” 작별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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