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림이 있는 산문] 최정 l 나의 중매쟁이

2011-09-28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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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참한 색시인데 왜 아직 혼자인구.. 하며 늘 짠한 맘으로 바라보던 이가 드디어 사람을 만나 새출발을 선언했다. 뒤늦게 국악에 빠져 공연을 하러 다녔는데 함께 다니던 동료중의 한사람이란다. 악기를 배우고 공연을 다니며 생기도는 모습만 봐도 정말 노후대책 잘하고 있다고 선견지명까지 들먹이며 칭찬했는데 거기서 또 앞으로 함께 늙을 남자까지 만났으니 이 어찌 일석 백조가 아니랴.

우리 젊어서는 남자가 뭔지 배우자가 뭔지도 모른채 어떤 친구는 첫미팅 파트너하고 결혼하기도 하고 또 많은 친구들은 집에서 정해준 사람하고 대충 만나다 결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혼해 살다보니 그제야 부부는 대화가 통해야 하고 가치관이 같아야 하는 거구나, 새록새록 깨닫지만 젊어서의 결혼이란게 그렇게 이성적 선택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이는 비록 늦게 만나 젊음의 열정은 못 나눴을지라도 이즈음같이 노년의 삶이 길어지는 세대에 늙으막까지 함께 음악세계를 공유 할 수 있을테니 얼마나 풍요로울 노년일지 그저 옆에서 보기만해도 그림이 좋다.사는데 사람 만나는 것처럼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돌아보면 그를 만나게 된 것도 운명이었겠지..

미래는 내게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무거운 심정으로 살던 시절, 몇살 아래인 그는 또래가 아니어서 편했다. 함께 봉사활동도 하고 밥도 먹고 놀러도 다녔다. 의대생이었던 그는 신부의 길을 가고 싶어했고 또 봉사에의 열망을 품고 있었는데 그 때 나는 뭘 믿고 신부되지 말라고 죽자고 말렸던지.. 그러다 어느 날,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점에서 내가 할수 있는 거라곤 시집 갈 길 밖에 없는데 혹시 내가 시집 갈 곳 없을까? 하고 농담으로 말했더니 심각한 얼굴로 자기 형한테 시집 오란다. 그러면서 자기 형이 공부 잘하고 실패란 걸 경험해 본적이 없어 성질은 더러운데다 주변머리까지 없어 마누라 호강 시킬 위인은 전혀 못되지만 대신 호강은 자기가 시켜 주겠노라고 한다. 그 때까지는 그에게 형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따져보니 집안이 알만한 사이고 믿을 만해서 한번 만나나 보자 했다가 순식간에 일이 이뤄저 나는 그의 형수가 됐다.

혹독할 수 있었던 시집살이도 그의 덕분에 수월했다. 미국생활중에서도 살기 힘들면 시동생에게 전화해서 중매쟁이 잘못 만나 이 고생이잖아, 빨리 물어 내, 하고 생떼를 쓰기도 했다. 그러면 그는 조금만 참으라고, 곧 빠리 구경 시켜주겠다고 나를 달래주기도 했는데 그것도 이젠 옛이야기, 지금 그 소릴 하면 아이고, 내 코가 열자요, 하고 오리발을 내민다. 이런 시답잖은 싱갱이를 옆에서 듣고 있던 큰조카가 큰 엄마,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호강 시켜드릴께요. 한다. 우린 이 집 남자들은 모두 세대를 넘겨가며 사기친다고 깔깔 웃는다.


늘 봉사가 하고 싶어 근질근질했던 시동생은 벌써 몇 십년간 무료봉사를 다닌다. 지난 번 한국에 갔을 때, 그가 진료하는 걸 보고싶어 따라 나섰더니 진료소 앞에서 갑자기 나를 붙들더니 그곳에선 아무도 그가 의사인걸 모른다고 주의하란다. 노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잠시라도 편히 누어 쉴수 있게 하는 것일 것 같아 아예 한의를 배워 침을 꽂아 놓고 쉬게 하는데 남들은 그를 침쟁이라고 한단다.

시동생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오랜 세월동안 친구처럼, 동생처럼 의지되었던 그가 참 고맙고 자랑스럽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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