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레베카 장 ㅣ 미장원에서

2011-09-26 (월) 12:00:00
크게 작게
초 가을 기운이 아침 저녁으로 산들산들 느껴지면서 새로운 머리 스타일로 변화를 주고 싶었다. 창 밖에는 마치 여자들의 변덕처럼 폭풍과 바람비를 뿌리더니 언제 그랬나 싶게 해가 반짝했다. 여름내내 질끈 묶었던 머리를 풀어 쇼트 헤어 컷으로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래 마음 내킨 김에 예약없이 갈 수 있는 회사 근처 미장원에 들렸다.

자리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림처럼 예쁘고 긴머리를 한 젊은 여성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남자 친구까지 따라 들어왔는데 여자들 속에서 어찌나 설쳐대는지 그 기세에 밀려 내 자리를 양보하고 말았다. 그녀가 마네의 소녀처럼 청순하고 아름다웠기에 , 그 앳되 보이는 여성을 감상한다는 차원에서 남자로 인한 격한 감정을 억제하기로 했다. 그런데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완전 <민둥머리> 처녀였기 때문이다. 비록 머리칼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녀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아마도 가발을 정리하러 미장원에 온 것 같았는데 그녀는 아픈 사람 같지 않게 자체발광으로 미모의 종결자 같았다. 거칠은 남자친구가 금지옥엽 대하듯이 그녀를 아끼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또한 설쳐대던 그녀의 남자 친구가 대단한 존재로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울컥 뜨거운 기운이 내 목줄기를 타고 내렸다.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왜 그런 머리를 하고 있는지 남자 친구한테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적한 병원에서 가냘픈 육신에 의지하여, 이 세상을 떠나려 하는 영혼을 붙잡고 떠나기 싫다고 울부짖었던 고 장영희 수필가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가슴만 쓰라려왔다.

인간은 무엇이든 동기만 부여 되면 어떤 일을 성취 할 수 있는 괴력이 생긴다고 믿어왔는데, 운명 앞에 선 인간은 너무나 나약하고 무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얼른 마음을 바꾸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기로 했다. <저 미인은 모델이나 단역 배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면서 입으로는 내 부정적인 공상의 사유를 꾸짖고 있었지만…한편으로는 머리카락 하나도 없는 저 아름다운 처녀도 빽빽한 짙은 숲처럼 무성한 머리카락을 가질 날이 오리라 믿고 싶었다.

밖을 내다보니 아까 활짝 웃고 있던 햇님은 흔적도 없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순간 일기변화는 운명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 인간이 손댈 수 없는 저기에 서 있는 자연 현상과 같이, 저 거울 속에 미녀도 사슴같은 애절한 눈망울로 저만큼 서있기 때문이었다.

(시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