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국경이 허물어진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국경타령을 하느냐 하겠지만 자식혼사를 앞둔 한국인 부모들은 이왕이면 언어와 풍습이 같은 동족과 연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이 아직도 크다.
시월이면 중국계 며느리를 볼 친구가 한국인며느리를 데려오는 자식이 효자가 아니냐고 한다. 남의 자식 데려다 내 사람 만들기도 쉽지 않은데 이질문화권에서 성장한 며느리를 맞자니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식 잘 키워보겠다며 이민 온 지인이 있다. 딸 셋이 공부도 잘하고 인물도 빼어나 부모의 보람과 기대가 남달랐었는데 큰딸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흑인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다.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렇게 배신할 수가 있느냐며 아버지는 딸과 의절하고 지낸다. 그런데도 손자는 보고 싶어 남몰래 멀리서 바라보다가 참담한 기분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내 둘째 사위는 프랑스인이다. 젊어 한때 파리에 살아본 적도 있어 그리 낯선 민족이 아닌데도 사위로 받아들이기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내 딸이 외국인과 결혼하겠다고 말 했을 때 억장이 다 무너지는 줄 알았다.
공예가 김영희의 자전적인 책을 읽고 열다섯 살 연하의 독일청년과 사랑에 빠져 그를 따라 타국생활을 한다 해도 그 절절한 사랑에 박수를 보내면 보냈지 이의가 없었다. 그런데 내 자식의 경우에는 그럴 수 없었다.
서로가 사랑한다는 데야 어찌 말릴 수 있으랴. 어쩔 수 없이 허락하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 녀석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너처럼 예쁜 와이프를 얻다니.”아깝고 서운한 어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딸은 “엄마,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건 나야, 내가 복 받았다고요.” 라고 한수 더 떴다.
비록 아이덴티티와 생김새가 다르고 언어소통이 어렵다 해도 인간관계는 같을 것이다.
내가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포용하며 사랑을 베풀 수밖에 없지 않는가. 다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국경 없는 지구촌만이 있을 뿐이리라.
지난 토요일에는 오이지를 버무리고 있는데 사위가 손자를 안고 들어섰다. 맛을 보라고 양념 뭍은 손으로 한 입 넣어주니 “봉, 봉, 트레 봉,”하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애교가 밉지 않았다. 더욱이 귀여운 손자를 품에 안으니 불란서사위가 진정 내 사람이 되었음을 알겠다.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