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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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라덴의 일기

2011-05-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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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중 칼럼

미국인들이 ‘테러’란 말을 할 때 자동적으로 거론되는 사람이름이기도 한 오사마 빈 라덴, 그가 얼마 전 미군 공격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공식 발표되었다. 그 당시 빈라덴 제거 작전 중에 임무를 수행하던 미군 특수부대가 그곳에서 일기장을 하나 발견 했다고 한다.

이 일기장에는 오사마 빈라덴의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를 통해 행해질 테러의 구상과 자세한 실행계획이 20페이지 가량 빽빽히 써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일기에는 빈라덴이 구상한 테러계획만이 아니라 미국의 아랍정책에 대응할 견해 등이 들어있었다고 하는데, 미국이 아랍세계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미국인을 살상해야하는지, 또는 워싱턴 정가에 정치적 불만세력을 투입하여 반목을 심화시켜야 한다는 등의 계획도 들어 있었다고 한다.


또 일기장에는 뉴욕만이 아니라 LA를 포함한 다른 도시들로 지역을 확대하여 수천명이상을 한꺼번에 살상해야 미국의 대아랍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내용도 들어 있으며, 올해 9.11테러 10주년을 맞아 미국 각 지역에서 대규모 테러를 감행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오랜 은거 생활 때문에 빈라덴이 알 카에다의 중심부에서 밀려나 조직에 대한 장악력이 약해졌을 것이라는 미국 측의 분석과는 달리 전화도 인터넷도 없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계속 외부의 하부조직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명령을 내린 것이다.

연락방법은 USB 메모리드라이버를 인편으로 전달하는 식이였다는데, 시간은 걸려도 추적을 피하기는 안전한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테러활동이 위축될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인류 평화의 적이 되어 버린, 세계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자로 꼽히는 일곱 명중에서도 제일 나쁜 악한이 되어버린 오사마 빈라덴은 과연 어떤 성장과정을 거친 사람일까? 무엇이 그를 세계적인 공공의 적이 되도록 했을 까?

1957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난 오사마는 신앙심이 깊은 집안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무하마드 빈라덴은 예멘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해, 거부가 된 몇 몇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나중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장관까지 지냈다고 한다. 오사마는 그 무하마드 빈 라덴의 52명의 자식 중 17번째 아들이다.

특히 빈 라덴의 가정은 거부임에도 생활이 검소하고 정직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집안이었다고 한다. 유복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오사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명문대학에서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하였으며 형들과 함께 영국으로 유학을 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학에 다닐 때 이슬람주의 조직중 하나인 부슬람 형제단을 알게 되고 그 지도자들의 영향으로 종교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 공격하자 그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항의하는 회교저항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1968년 아버지 무하마드가 사망할 때 물려받은 유산과 모금활동, 그리고 형제들의 지원으로 오사마는 이슬람 구제기금인 “알 카에다”를 설립하였는데 1988년에는 알 카에다를 무장조직으로 재정비했다.

198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자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 된 오사마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가서 사업을 하기도 했으나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하자 그의 테러리스트로서의 본색이 서서히 들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상품 불매운동 등을 비롯하여 미군주둔에 반발하여 많은 활동을 하였고, 이후 수단으로 망명하여서는 더욱 강한 세력을 가지게 되고 과격하여져서, 세계 곳곳에서 테러를 일으켜 왔다. 1994년 이짚트, 알제리 등에서 발생한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하였고, 1998년부터는 본격적인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면서 혁명정부인 탈레반의 보호아래 은신하며 수 많은 테러의 주범으로 세계를 경악케 하였다.

그 해 또, 아프리카 주재 미국대사관이 두 곳 폭파되어 수백명이 사망하였고, 2000년 미 해군구축함에 대한 자살테러를 저질렀으며 2001년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9.11테러로 인해 수천명이 사망하였다. 2004년에는 스페인의 마드리드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동시다발적인 테러를 자행하여 수백명이 죽고 1500명이상이 다쳤다.

2004년에는 석유가 미국에 도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걸프지역의 송유시설을 파괴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그 후에도 런던의 버스와 지하철의 폭탄테러를 하기도 하는 등 끝없는 테러를 자행해 왔다. 이제 빈라덴은 죽었지만, 그가 저지르거나 기획하고 지시한 이런 무자비하고 비 인류적인 테러가 또 다른 대의 명분으로 위장되어 제2의 오사마가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고 테러전문가 들이 분석하고 있다.

또한 종교를 앞세운, 정도가 지나친 살인행위에 대해 거의 대부분의 아랍인들이나 무슬림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빈라덴이나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도 잘 알고있다는 사실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설 땅이나 동조자들이 줄어들면 더 악랄하고 규모가 큰 테러를 저지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사자성어 “과유불급” 이란 말을 빈라덴이 일찍 알았더라면 많은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고 아랍인들의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수도 있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연중

(213)272-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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