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문 선희 ㅣ 불혹의 나이

2011-05-1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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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귀가 얇은 편이다. 귀가 얇다는 말은 주로 부정적으로 쓰인다. 나는 또 ‘논어’에 나오는 ‘이순’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귀가 순하다. 참으로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귀가 얇다는 말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 관련된 단어가 ‘불혹’이다.

예전에 아시는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마흔이 넘기를 손꼽아 기다렸어요. 그리고 지금 마흔이 넘으니 정말 좋습니다.” 그 말씀은 돌이 채 안된 첫 아기를 혼자 감당하면서 타향 살이를 막 시작한 나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들렸다. ‘아, 그 나이가 되면 내 이 힘든 시기가 끝나고, 모든 갈등도 사라지게 되는구나.’ 그러한 생각이 들자 마흔이란 나이는 나에게도 거부하고 싶은 나이가 아니라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공자님도 그러지 않으셨나. 마흔에 미혹됨이 없으셨다고.

그 후로 세월은 십년도 넘게 흘러 내 자신이 마흔 살이 넘은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 그런데 기다리고 기다렸던 마음의 평화 혹은 모든 일들을 너그럽게 넘길 수 있는 여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에게는 그런 근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것들에 “혹”하거나 또는 “혹”되고 있다. 내가 바라던 중년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공자님이 틀리셨나?

이러한 고민은 나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얼마 전 통화에서 친정 어머니는 칠순이 되서도 세상 미혹하는 것들에게서 자유로와 지는 것이 힘들다고 하셨다. “공자왈 마흔이 불혹이라고 했던 것은 당시 사람들의 수명이 짧았으니까 그런거야. 그때야 마흔이라면 천명을 다해가는 나이라고 생각했었겠지만 요새처럼 장수하는 세상에서 마흔은 한참 어린 거지.


그렇게 결론을 내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불혹의 나이라는 것은 저마다 달라지게 된다. 부단히 자신을 살펴보아 가다듬는 사람에게는 빨리 오기도 하지만 막연히 자연에만 맡기는 사람에게는 요원한 것이 아닐까? 게다가 나처럼 귀가 얇은 사람이 불혹의 경지에 이르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이리라. 여기서 만고의 명언을 다시 곱씹어 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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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희씨는 중학교에 다니는 1남 1녀를 둔 엄마이자 번역가이다. 연세대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내친김에 교회역사로 박사까지 받았다. 번역하는 책들은 대부분 종교서적이다. 그러나 여성의 창에서는 종교적인 이야기 보다는 삶의 이야기를 주로 하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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