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강정은 ㅣ 항상 있어야 할 곳

2011-05-09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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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가는 커피집이 있다. 커피를 좋아하지는않지만 친구를 만나 만담에 푹 빠지게 하는 곳이라 잘 찾는다. 그 곳에 가서 사람을 만날때는 이미 기분이 반 정도는 잡혀있어 커피를 받아 들고 의자에 앉는 순간 바로 수다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다 무슨 이유로 장소를 옮기게 되었다. 이름은 같은 커피집인데 다른 장소에서 만났다. 평소 처럼 바로 분위기가 잡혀갈 줄 알았는데 뭔가 낯선 분위기때문인지 주위를 둘러보며 적응하느라 횡설수설 생뚱맞는 얘기들만 주고 받았다. 오늘은 수다 삘이 아닌가하며 깊은 대화 보다는 너네 아이 요즘 어떠니 같은 겉도는 대화를 짜내다 헤어졌다.

밥 숫가락도 먹던 걸로 먹어야 소화가 잘 된다는 옛날 시골 할머니의 말에 그런게 어디있냐고 웃어댔던 기억이 있다. 엉덩이랑 무릎 부분이 밉상스럽게 밑으로 쭈욱 나와 그 옷 좀 입지말라는 남편과 딸의 잔소리에 눈치를 보게 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손이 가는 오래된 잠옷 바지가 있다. 매일 바닦에 굴러다니며 때만 타던 괄시 받는 곰인형을 어느 날 눈에 띄길래 굳게 맘 먹고 버렸더니 다 큰 녀석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인데 버렸다며 예상 밖의 심각한 반응을 보여서 쓰레기 통을 뒤져 다시 꺼내 놨던 일도 있다. 그리고는 얼마 안 있다 다시 온 집을 굴러다니는 찬 밥이 되었지만…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나 또는 해줘야 될 상황에 항상 해주는 것이 있다는게 오늘은 하나둘씩 생각이 난다. 점점 바쁜 생활에만 신경을 쓰며 산탓에 주위에 작은 것들을 둘러 볼 시간이 없었나보다. 그 단골 커피 집이 나의 인생 이야기 집이 되어 준 곳이라는 사실이 몇 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깨달아지고, 10년이 넘게 매일 같이 닦아 쓰며 나의 식욕을 채우려 사용했던 숫가락도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참 오래 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식구들의 놀림에도 불구하고 입게되는 그 낡은 잠옷 바지를 오늘은 더 닳지 않도록 빨아 잘 접어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접어두었다.

항상 있어야 할 곳에 있고 또 가던 곳에 갈 수 있는 곳이 오늘은 참 정겨웠다. 하나 둘씩 떠올리다 보니 훵한 가슴이 점점 채워진다. 나도 그리고 나의 집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억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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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은씨는 지난번 여성의 창 필진중 한명으로 앞으로 3개월 더 여성의 창을 쓰게 됐다.
20년전 이민와 UC 버클리를 졸업한 강정은씨는 올해로 결혼 13년차 주부이자 직장인이다. 6학년, 1학년 아들에 4학년 딸까지 3남매를 키우면서도 병원에서 일하는 수퍼맘이다.

(병원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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