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소리에 잠 깨어보니 고요함 속에 시계추만 똑딱인다. 태평양을 건너오던 부드러운 목소리, 이곳까지 메아리쳐오던 기도 소리.
동산에 잠드신 지가 벌써 두해가 되어간다. 아직도 엄마가 보고 싶어서 마음이 우울해 질 때가 있다. 엄마의 음성이 그리워서 지갑 속의 사진을 들여다보곤 한다.
이제 시간이 흘러 갈수록 엄마와의 좋은 기억들과도 조금씩 멀어질 것이다.
친구의 어머니를 뵈며 남모르게 눈물 삼키는 나를 만난다. 당신이 돌아가시면 조의금을 받지 말라고 하셨고 장례에 오실 분들 앞으로 남기신 편지에는 이생에서 만나서 고마웠다며 하늘나라에서 나중에 다시 만나자고 쓰셨던 나의 엄마. 길러주신 어머니도 고맙지만 다시태어나면 꼭 친엄마 밑에서 자라고 싶다 하셨고 원 없이 공부도 해보고 싶다 시던 나의엄마.
완고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교육의 기회를 상실한 채 서당에서 공부하는 오라버니 어깨너머로 중용, 대학까지 공부하신지라 한자에 능하셨고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노인부 회계라는 감투를 쓰시고 즐거이 돋보기 아래로 열심히 장부 정리하시던 엄마의 모습.
생신이나 어머니날에 행여 송금이라도 해드리려고 하면 평소 외우시던 은행 구좌번호를 매번 똑똑히 불러 주시곤 하셨다.
몸이 불편한 남편을 두고 내가 서울에 며칠 갔을 때, 형제들이 좀 더 있다가라고 종용해서 내가 유혹에 약해질 때에도 빨리 가라고 반기를 드시며 나를 밀어 보내신 후 뒤에서 조용히 우셨단다.
내가 떠나오던 날도 오랫동안 병치레하는 사위가 행여나 늙어 보이면 안 된다고 당신의 염색약까지도 가방 속에다가 손수 넣으셨던 참으로 인자하셨던 엄마.
멀리서 임종도 못하고, 장례식장에서 차마 보낼 수 없어 얼마나 통곡 하며 슬퍼했던지 지나온 내 인생의 기억 속에서 언제나 그림자처럼 내 뒤에 계셔주셨던 엄마, 나의엄마.
누군가가 내 살아온 세월 속에서 가장 사랑했던 한사람이 누구 이었냐고 묻는다면, 그리고 이제 남은 시간 속에서 가장 그리워할 한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그분은, 아직도 그리운 나의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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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임 북가주 지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강영혜씨는 1970년 도미한 후 행복하게 살다 96년 의료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15년째 돌보고 있다. 그와중에도 두딸을 잘 키워 첫째는 하버드를 나와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고 둘째도 오티스를 졸업하고 헐리우드의 유명 회사에서 디렉터로 일하며 패리스 힐튼같은 헐리우드 배우들의 의상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강씨는 앞으로 석달동안 미국에서의 즐겁고 고단한 삶을 뒤돌아 볼 예정이다.
(아여모 북가주 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