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전진영 ㅣ 버림의 미학

2011-04-20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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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참 징하게도 뭘 못 버린다. 다 나름 추억이고 어느하나 버릴데없는 소중한 것들인데 남이 보기엔 대략 잡동사니. 못 버리는 대부분의 물건들은 금전적이나 장식의 가치가 있는것도 아닌, 지극히 평범하지만 사연으로 똘똘뭉친 자잘한 물건들, 종이 쪼가리, 노트, 편지들, 뭐 이런거다.

언젠가 “복잡한 환경 속에서는 어떤 좋은 생각도 떠올릴 수 없다” 라는 글귀가 마음속에 꽂히더니만 사방에서 ‘비워라, 버려라, 줄여라…’ 하는 문구만 자꾸 눈에 띄이면서 이 집안을 확 뒤집어 대대적인 정리정돈을 해야 겠다는 독기(?)를 품게 되었다.

버리는것 쯤이야 우습게 생각했는데. 처음엔 잘 나가다가 어느순간 힘 풀리고 자세 퍼지더니 얽힌 사연 곱씹고, 감상에 젖어 물건 만지작 거리다가 결국, 이것만은 절대 못 버린다로 끝이났다.


거창하게 치우겠노라 부르 짖었건만 정작 내다 버리는건 마켙 작은 쓰레기봉투 한 두개였다 - 쓰나미로 밀려오는 폭풍 허무감. 주로 여기 있던걸 저기로 옮기는 나의 “버리기 대청소” 였다. 인터넷에서 퍼온 정리 대가님들의 노하우와 잡지나 신문에서 오려 두었던 고수들의 팁을 총동원해 읽으면서 마음가득 그 느낌을 비축한다. 이런게 있었어? 하는건 불필요 – 버려! 여러개 있는 비슷한 것들 – 대표 하나만 남기고. 나중에 읽겠다고 모아놓은 자료들 – 나중은 무슨, 가차없이 싹둑! 가슴 찡한 사연 만땅 물건들만 엄선해서 작은 박스에 보관. 쓸만한 것들은 - 기부. 그.리.고 이런것들 매번 보고 반복 정리하느냐 버려지는 나의 피같은 시간들 거듭 생각하기! 이 대목에서는 싹 다 버려서 시간을 단축 해야겠다는 생각이 울컥 밀려온다.

점점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미련도 있었고, 버린거 급 후회하고 다시 줏어오는 쌩쇼도 거듭했다. 그러다가 몇주전엔 왠만한 영수증과 자질구레한 노트를 쏵~ 다 버렸다. 흐미 후련~ 전에는 미처 몰랐던 버림의, 내려 놓음의 미묘가 이런거군. 오늘도 이 삘로 달려서 아직 점령치 못한 회사 서류들을 확 덮쳐볼까나. 좀 더 깊고 찐한 명상과 최면의 시간을 요할 것 같다. 그러나 기필코 돌진해서 너저분한 서류들을 초토화 시켜 슬림한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아자!


(동양인 건강진료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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