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강정은 ㅣ 엄마

2011-04-18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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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 셋을 키울 때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있었다. ‘그때가 좋을 때’라는 말이다.
돌 지난 아이를 키울 때다. 막 걷기 시작하는, 대화도 안 통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와 하루 종일 있다 보면 그 하루에 나의 시간은 없는 듯했다. 밥을 먹는 때나 화장실 가는 때도 나의 신경은 아이에게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구석에 앉아 운적이 적어도 세 번은 되겠지… 그런 내게 나의 그 때를 즐기라고 하면 정말 시어머니 구박보다 더 싫었다.

밥을 서서 먹기도 하고 , 먹던 도중에 일어나 사고치는 아이 봐주다 나중에는 식은 밥에 입맛을 잃어 그대로 설거지통으로 집어넣는 생활을 어떻게 즐기라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이와 내가 서로의 안전 포즈에 있기까지 항상 불안해하는 그 정신적 스트레스를 어떻게 즐기라는 건지… 한마디로 불난데 부채질이라 생각했다.

첫 정이든 큰 아이가 두 살 때 나는 둘째를 임신해 입덧을 하고 있었다. 장을 보기위해 있는 힘을 다해 아이를 데리고 마켓을 갔다. 내 손을 잡고 졸졸 잘 따라오던 아이가 물건을 보고 집는 한 2분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온 마켓 안팎을 돌며 주인아주머니와 정신없이 찾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만약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평생 나쁜 엄마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눈앞이 하얗게 변했었다. 다행이 건넛집 빨래방에서 친절한 멕시칸 아저씨가 데리고 나와 찾을 수 있었지만… 이런 생활을 어른들 말씀처럼 즐기지 못하는 내게 문제가 있는 건지도 생각해 봤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아이들이 크고 서로 대화가 되고 각자의 일을 알아서 하는 나이가 되다보니 점점 엄마의 역할이 줄어드는 걸 느꼈다. 어린 아이들에게 엄마의 존재는 자신과는 뗄 수 없는 존재였지만, 아이들이 클수록 엄마의 필요가 점점 줄어든다.

나의 시간이 점점 늘어서 좋았다. 자유의 냄새가 났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공중에 떠다니는 풍선처럼 누군가 날 좀 잡아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이들과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서로의 눈빛 속에 통하는 정이 있다.

그래서 깨달았다. 나는 여자다. 그래서 엄마가 되었다. 그 엄마를 살게 하는 것은 엄마를 필요로 하는 아이인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너무나도 열심히 살았던 것이다. 뿌듯함으로 정리하고 이제는 아내로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 다음은 아직 모르겠지만.

(병원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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